고리 1호기 테스트베드 삼아 해체시장 안착
산업계 “전문인력 양성 위해 생태계 살려야”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으로 첫 걸음
[에너지신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국내 첫 해체예정 원전인 고리 1호기 현장에서 원전해체연구소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에 따라 국내 최초의 원전해체연구소가 오는 2021년 하반기 부산·울산 및 경주에 설립될 예정이다.

원전해체연구소는 설계수명 완료로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의 안전한 해체와 함께 국내외 원전해체시장의 성장에 선제 대비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원전해체연구소는 부울 접경인 고리원전 내 경수로 분야가, 경주 감포읍 일원에 중수로 분야가 각각 들어선다.

중수로는 원자로 형태와 폐기물 종류 등이 경수로와 달라 별도의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별도 설치가 필요하다. 장비이동, 폐기물 관리 및 원전 인근 관련 인프라를 고려해 월성본부 인접지역이 조성지로 최종 선정됐다.

연구소는 원전해체산업의 구심점으로서 영구정지된 원전을 안전하게 해체하기 위한 기술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베드, 인력양성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동남권 등 원전지역 소재 원전기업의 해체산업 참여를 지원할 계획이다.

원천기술의 상용화 및 실증을 위해 원자로 모형(Mock-up), 제염성능 평가시설, 절단설비 등 핵심장비를 구축하고, 지역별 기업지원기관, 대학교, 연구기관 등과도 적극 협력해 동남권 지역 원전해체산업 육성의 허브(Hub) 역할을 맡는다.

또한 연구소 준공 전이라도 원전해체 참여희망 기업을 지원하고 원전해체를 사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음달 중으로 연구소 설립준비단을 출범해 연구소 설립준비 및 인력선발, 장비구입, 기술실증 등 연구소 역할 일부를 조기에 수행하게 된다.

원전해체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절대적 강자가 없는 만큼 조기 집중투자 및 국내 기술과 산업역량을 활용한다면 국내 노후 원전의 안전한 해체는 물론 해외시장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원전 해체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건설을 통한 산업생태계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 원전 해체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건설을 통한 산업생태계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따라서 원전해체연구소는 해체산업 육성의 구심점으로 원전기업의 초기일감 창출, 전문기업 육성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업부는 2020년대 후반부터 원전해체 산업 규모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보고, 고리 1호기 해체를 발판삼아 국내 원전기업의 미래 먹거리로 시장을 선점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까지 물량 조기발주, 민관공동 R&D, 장비개발·구축 등 선제투자를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원전해체산업 4대 중점 육성전략 추진
지난달 17일 확정 발표된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안)에 따르면 건설·운영을 비롯한 기존 선행 주기에 해체, 폐기물 관리 등 후행주기 분야까지 더해 원전산업 전 주기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의 경제 활력 제고에도 기여토록 한다.

산업부는 원전해체산업 ‘4대 중점 육성전략’으로 △초기시장 창출 및 인프라 구축 △원전해체 전문 강소기업 육성 △단계적 글로벌시장 진출 지원 △제도기반 구축을 제시했다.

먼저 초기시장 창출 및 인프라 구축을 위해 본격적인 원전해체 시작 전인 오는 2022년까지 해체물량 조기발주, 상용화 R&D 등 민관 합동으로 대규모 선제 투자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고리 1호기 해체착수 이전이라도 원전기업의 초기일감을 창출하고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원전해체 사업을 세분화해 해체 준비 시설 등 가능한 부분부터 조기발주에 착수할 예정이다.

또 원전해체연구소를 신속하게 설립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및 관련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기술 고도화·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한편·폐기물 저감 및 안전관리를 위한 기술개발, 고부가 핵심장비 개발에도 나선다.

원전해체 전문 강소기업 육성의 경우 원전기업이 해체분야로 사업을 전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생태계기반, 인력, 금융 등 종합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또 지역과 협력해 인근 산업단지 등을 중심으로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기업집적 및 생태계 활성화를 추진한다.

이와 함께 기존 원전 건설 및 유지보수 인력을 해체수요에 맞춰 단계적으로 전환, 전문인력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오는 2022년까지 현장 전문인력 1300명 양성을 목표로 세웠다.

실적(트랙레코드)이 중요시되는 해체시장의 특성을 반영, 고리 1호기 해체실적을 토대로 3단계에 걸쳐 단계적인 해외 진출도 지원한다.

고리 1호기 해체 진도에 맞춰 해외 해체원전 단위사업 수주→원전 운영 경험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제3국에 선진국과 공동진출→제3국 단독진출이라는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를 위해 해외 선진기관과의 해체 관련 정보 및 인력 교류, 공동연구 등 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할 예정이다.

제도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안전한 원전 해체관리를 위해 관련 규정을 정비, 마련하고 대국민 정보 공개를 확대한다. 전문기업 확인제도 운영 등 산업육성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신설하고 안전기준 명확화, 해체 세부기준 조기 마련 등에도 주력한다. 원전해체로 발생하는 폐기물 등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 및 관련 정보공개 확대로 대국민 이해도 제고, 신뢰 구축에 나선다.

산업부는 4대 정책과제의 차질 없는 수행을 통해 2030년대 중반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고 세계 5위권의 원전해체시장을 조성한다는 각오다.

해체산업 육성, 부정적 여론도
이같은 정부의 해체산업 육성 의지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야당 및 원전산업계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해체기술 및 해체인력 육성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신규인력 공급이 줄고, 원자력 전공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며 해체 분야의 전망이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단 고리 1호기 해체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12기의 원전 폐로가 예정돼 있으나 현재 국내 원전 해체 분야 인력 규모는 약 100여명으로 1000명 이상을 보유한 프랑스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원전 1기가 해체될 때마다 피크 인력 수요는 연간 기준 600여명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2022년 1000명, 2029년에는 4383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인력은 총 필요인력의 2.3% 수준에 그치고 있다. 향후 원전 해체 분야에서 획기적인 인력 확충 노력이 없다면 국내 원전 해체도 외국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산업부의 인력양성 계획과 달리 벌써부터 원자력 신규 전공자들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카이스트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2학년 진학 예정자(94명)가운데 원자력 및 양자공학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 지난달 15일 열린 원전 해체산업 육성전략 수립을 위한 민관합동 간담회.
▲ 지난달 15일 열린 원전 해체산업 육성전략 수립을 위한 민관합동 간담회.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원전산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이미 원전 산업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 원자력 전공자의 공급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해체 인력을 따로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력계는 국내 원자력 전공 기피 현상이 향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학사 졸업자를 중심으로 국내 원자력 전공자의 공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며 현재 500명 수준인 국내 원자력 전공자가 2030년에는 200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즉 원전 해체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충분한 숫자의 고급인력들이 필요하고, 산업생태계가 유지돼야 인력 확보가 용이한 만큼 신규원전 건설 및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계의 주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수원 및 민간기업 소속 전문인력들을 대상으로 원전해체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고리 1호기 해체 일정에 맞춰 인력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산학연과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