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석유산업은 발족한지 불과 1세기 이내에 거대산업으로 급성장했고, 20세기에 인류가 저지른 두 큰 전쟁의 주요 원인이었다.

너무 새삼스럽지만 검은 황금인 석유 덕분에 현대인은 냉난방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TV를 시청하고, 출퇴근이나 휴가에서 자동차를 이용하며, 해외출장이나 여행에서 비행기를 이용하고, 한밤에도 전등을 밝혀 낮밤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도 현대문명에 필수불가결한 석유는 20세기 중반부터 피크이론이 등장하면서 그 종말을 전망하는 논의가 있어왔다. 그 어느 에너지원보다 효율적으로 범용되면서 인류에게 다대한 영향을 행사한 석유, 미인박명의 운명이다.

석유 고갈 논의는 자칫하면 호사가의 탁상공론이 될 우려가 없지 않지만, 인류가 더 이상 석유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세계는 경제와 정치는 물론 문화의 패러다임 자체가 일대 혼란에 빠져들 것이기에 좀 이르기는 하지만 미리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대책 없는 종말이어서는 아니되고, 대책 강구는 빠를수록 좋다. 석유산업의 미래에 관한 논의를 첫째 석유고갈론(생산Peak이론), 둘째 석유의 현실적 부존 한계, 셋째 환경·기술 측면, 이 세 갈래로 나누어 시도해볼 수 있다.

석유고갈론은 미국의 킹 허버트(King Hubbert) 박사가 1956년에 처음으로 제기했고, 콜린 캠벨(Colin Campbell), 리차드 던컨(Richard Duncan)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석유의 채굴량이 상승하다가 최대 정점에 이르면 그때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가정 하에 석유 고갈 시점을 예측했다. 최대 정점 시기는 논자마다 상이한데 허버트는 1965년 또는 1972년을, 캠벨은 1989년, 1995년, 1996년, 그리고 2002년을, 던컨은 1979년으로 예상했다. 고갈시점도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중반까지 다양했다.

한동안 잠복돼 있던 석유고갈론은 2008년에 국제유가가 폭등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아람코)의 CEO는 “세계 대부분의 유전이 개발을 완료했다. 그럼에도 산유국들이 매장량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이 피크라는 뜻이며 고갈 시점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석유산업 정보지인 PIW는 “적어도 21세기 중반 이전에는 고갈시기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고, IEA도 “값싼 석유시대는 끝났지만 석유 고갈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최소 40년간은 문제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으며, 미국 에너지부(DOE)도 석유생산 피크 시기를 2037년경으로 예상했다.

2010년도에 세계 석유소비량은 하루 8900만 배럴, 연간 200억 배럴이었는데, 그때까지의 확인매장량을 연간 소비량으로 나누면, 석유의 가채년수는 2010년을 기준으로 약 45년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추정에는 다음과 같은 변수들을 추가해야 한다. 세계 인구의 증가와 석유수요의 증가, 탐사기술의 발전과 추정매장량의 확인매장량으로의 산입, 셰일석유·모래석유 등 비 전통 에너지의 대규모 부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종합 고려하면 아무래도 석유의 가채년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술혁명으로 평가되는 ‘수평시추기술’ 개발로 미국 남부지역의 셰일석유 생산이 가능해졌는데, 장차 가채년수의 증가에 적지 않게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보편화되지 않아 현재 미국 이외 국가들에게는 아직은 ‘그림 속의 떡’이며, 미국에도 에너지 자립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다.

석유의 현실적 부존 한계에 관련된 논의는 서로 사정이 다른 지역별 석유 가채년수에 관련돼 있다. 석유 가채년수를 지역별로 살펴보면, 중동지역은 평균 88.1년, 중동 이외 지역은  21.3년에 불과하다. 후자를 들여다보면 북해, 동남아, 북미의 유전은 10년 내외, 카스피해 지역은 20년 정도이다. 이런 구체적 사정을  감안하면 20년 이후에도 대량의 석유 수출이 가능한 곳은 오직 중동지역 뿐이다. 석유를 대체할 획기적인 연료가 개발되지 않는 한, 세계 에너지원 공급에서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 된다.

가채년수의 편차에 기인할 이러한 향후 상황은 중동지역에도 유리하지 않고 세계 전체에 불리하다고 하겠으며, 모종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할 수 있다.

▲ 한국석유공사는 9일 호주최대 석유개발회사인 우드사이드 사와 함께 동해 심해지역8광구와 6-1광구 북부지역 탐사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동은 이미 유가를 두고 소위 ‘치킨게임’을 벌리고 있다. 한편 고유가로 촉발된 자원민족주의가 앞으로 석유개발과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견하기 어렵다. 또 근년 이래에도 중동은 미소의 개입, IS의 대두와 패퇴, 시리아의 내부 갈등,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주 확대와 터키의 예리한 경계 등 작고 큰 갈등이 석유에 직접 간접 관련하여 끊임없이 발생했는데 이런 갈등은 향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지속될 것이며, 가채년수가 그 끝에 도사리고 있다고 하겠다.

환경·기술 측면의 논의는 석유 고갈과 가채년수를 배경으로 한 새 자원개발에 관련된다. 금세기 들어 초(超)고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석유메이저들이 M&A를 활발하게 일으켜 ‘슈퍼메이저’가 등장했고 기술과 자금,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심지하, 심해저, 극지, 오지 등 미개척지 에너지자원 개발과 투자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통제 없이 전개되는 개발로 심지하와 심해저가 오염되고 있고, 싱크홀, 지진, 쓰나미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이 대목에서 2017년에 지열발전으로 촉발된 포항의 인공성 지진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지난 에너지 역사를 되돌아보면 목재가 소진돼 석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석탄이 소진돼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석유의 운명 역시 석유의 가채매장량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라고 한가롭게 얘기할 수는 없다.

석유의 운명은 크게는 지구 환경, 그 다음으로는 국제 정치·경제 변동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

인류는 21세기의 남은 시간에 즉 석유 고갈 이전에 현재에도 시도되고 있지만,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범용 가능한 ‘대안(代案)에너지’를 반드시 찾아내거나 개발해야 한다. 또 인류는 에너지부존량이 아니라 에너지기술로 승부를 내야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도 거듭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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