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컬럼]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 - ② 산업혁명과 에너지
[연재컬럼]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 - ② 산업혁명과 에너지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3.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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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앞으로도 여러 시각에서 성찰이 지속될 이 유명한 용어는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의 저자 아놀드 토인비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18th Century in England(1884)’에서 처음 사용했다.

주지돼 있듯이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해 일어난 사회·경제의 급격한 변화를 가리키며, 석탄 등 지하자원의 활용과 방적기, 방직기, 증기기관 등 새로운 기계의 발명에 기인했다.

특히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영국은 석탄을 산업생산의 에너지원으로 본격 투입하며 기존의 풍력, 수력, 인력, 축력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에너지를 얻었으며, 혁명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그 사용량도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고, 경제 규모도 국내 시장에서 세계 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1840년 아편전쟁 때 청(淸)의 목제 범선들을 유린한 영국의 네메시스호(1839년 건조)가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한 증기기관을 장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된다.

석탄은 고생대와 중생대에 식물이 땅속에 묻혀 오랜 세월에 걸쳐 탄화(炭化)된 물질이다. 탄화 정도에 따라 갈탄(brown coal), 유연탄(bituminous coal), 무연탄(anthracite)으로 구별된다. 갈탄은 탄화의 정도가 가장 낮고 열량도 낮아 유럽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된다.

무연탄과 유연탄은 모두 hard coal이라고 하는데, 무연탄은 탄화 정도가 가장 높고 연소 과정에서 연기가 나지 않으며, 한반도 베트남 등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유연탄은 세계에 가장 널리 분포돼 있으며 탄화 정도가 높고 열량이 가장 높으며, 연소 과정에서 연기가 난다. 갈탄, 무연탄, 유연탄은 모두 연료로 사용돼 통칭 연료탄(steam coal)이라 한다.

이밖에도 탄화 과정을 두 번 이상 거쳤으며, 몽골, 사하공화국, 모잠비크, 캐나다의 British Columbia, 인도네시아의 카리만탄 지역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제철용 유연탄(일명 콕킹콜(cocking coal))이 있는데, 원료탄(原料炭)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왜 18세기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을까?

18세기에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석탄과 철의 매장량이 풍부했고, 굴착기법과 야금(冶金)기술도 발달돼 있었다. 또 수로를 이용해서 물자를 수송하는 방법인 수운(水運)이 발달돼 도로 운송의 단점마저도 보완할 수 있었다.

수운은 석탄이나 철광석처럼 무겁고 부피가 큰 화물을 운송할 때 유리했다. 한편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과 새로운 농업방식으로 농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도시노동자가 됐는데, 이들은 산업예비군으로 불리며 영국의 산업화에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는 법과 질서를 확립하고 사유재산권을 보호해 산업화를 촉진하는 한편, 경제활동에 제약이 되는 독점과 특권, 길드(guild)를 최대한 억제해 경제 주체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책을 폈다.

당시 경쟁 상대국들의 국내외 사정은 영국과 사뭇 달랐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었으며, 정정 불안은 산업혁명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위축시켰다. 독일도 석탄과 철광이 풍부했지만 분열에 시달리다 1870년에 국가통일을 이루고 나서야 비로소 산업 팽창이 시작됐으며, 네덜란드는 아예 석탄이 없어 공업기반이 없는‘중상주의’국가로 발전했다.

요컨대 석탄은 당대 영국의 공업· 교통· 정치환경과 유용하게 결합해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산업혁명의 본격화로 증기기관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그 사용량이 폭발하듯 증가해 훗날 런던포그(London Fog)등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단초가 된 대기환경의 악화를 야기했다.

19세기 후반에는 과학기술 지식을 산업에 응용한 전기산업과 화학공업산업이 출현하면서 세계는 2차 산업혁명을 맞이했다. 이 시기에 전통산업 분야인 철강산업에도 엄청난 기술 진보가 있었으며, 열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바꾸는 새로운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이 출현해 20세기 운송수단의 혁명을 예고했고, 석유와 천연가스가 산업용 에너지원으로 부상했다.

비록 1880년대에 석유나 가스를 사용하는 엔진이 등장했지만, 19세기 말까지는 석유가 산업의 핵심 에너지원이 될 수 없었다. 1900년대에 영국의 석유 가격은 석탄 가격 보다 4배 내지 20배나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유의 정제 및 증류기술이 개발되면서 석유 가격은 급속도로 하락했다.

20세기 초에 석유가 크게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영국 해군장관이 된 윈스턴 처칠과 영국해군에게 돌려야 할 것 같다.

석탄과 석유간의 가격 격차 해소도 한 요인이었지만, 수송문제와 열효율에서 석유는 석탄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유리했기에 1911년에 영국 해군은 전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1차 세계대전 때 월등한 기동력 덕분에 독일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었다.

처칠은 과감하게 미리 석유를 선택해 제1차 세계대전의 운명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후 석유는 석유화학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이내 군사부문을 넘어 산업부문의 주요 에너지원이 됐다.

한편 2차 산업혁명 기간 중 인류가 새롭게 사용한 에너지로 전기를 간과할 수 없다. 전기는 그 자체가 에너지원은 아니다. 수력과 화석연료를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원으로부터 변형된 형태로 얻어졌는데 전송, 변환, 제어 면에서 다른 에너지에 대조되는 탁월한 이점을 지닌다.

또 빛, 열,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로 쉽게 변화할 수 있으며, 차폐(遮蔽)가 간단해서 다양한 회로를 이용해 제어하기도 용이하다. 전기는 원동기의 장소 상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동력관리도 가능하게 했다.

인류는 또 20세기 후반에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자 무력수단으로 개발됐던 원자력, 바로 우라늄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원자력을 새로운 에너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자력은 이전과는 성격이 아주 다른 에너지이다.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에너지였으며, 2019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석유, 석탄 다음으로 그 비중이 크지만, 오늘날 논란의 대상이 돼 있기도 하다.

인류는 역사진행과 더불어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계속 발굴해 향유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안전과 환경의 위협이 점차 가중되고 있다. 모순에 가깝다고 할 이런 문제는 어디 에너지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우리의 삶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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