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에너지 도시가스, 지정학적 위험 취약
집단에너지 정책 오류 인정하고 미래지향해야

[에너지신문] 지난 2018년은 우리나라 집단에너지 산업에 있어 상당한 흑역사로 기억될 듯싶다. 이미 수년째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많은 지역난방 사업자들의 경영 상황은 둘째 치고서라도 지난해 2월 말 경기도 분당지역에서 온수관 누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 9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수관 파열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지난해 6월에는 서울시의 한 아파트 단지가 난방 방식을 지역난방에서 도시가스 난방으로 전환하는 최초의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그동안 집단에너지 업계에서는 사업성 확보를 위해 정부에게 보다 강화된 지원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집단에너지 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말하며 집단에너지의 경제성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이렇게 업계의 안팎에서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크듯이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집단에너지 지원을 두고 의견이 팽팽히 갈린다. 게다가 지난해 발생한 집단에너지 관련 사건·사고로 집단에너지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정부 입장에서는 집단에너지 지원의 정도를 두고 더욱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집단에너지의 찬성과 반대의 근거는 무엇보다 에너지효율성과 경제성에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집단에너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에너지효율성이 높은 열병합발전을 활용하기 때문에 전력과 난방 공급에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도 감소해 기후변화 대응에도 효과적이라고 덧붙인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가스 열병합발전의 증가로 전력 생산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사업자들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 것은 결국 경제성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또한 기후온난화와 건물 단열 향상에 따른 난방 소비 감소로 열병합발전의 전력 생산 비중이 높아져 실제 운영상의 에너지효율성은 설계된 기술효율성보다 낮다는 점도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다.

여기에 지난해 난방방식을 지역난방에서 도시가스로 전환한 아파트 단지가 등장하는 등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지역난방의 요금과 만족도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집단에너지는 한마디로 골칫거리다.

그런데 말이다. 당장 그리고 앞으로 당면하게 될 과제들을 고려해보면 집단에너지는 단순히 지금의 경제성이나 사업성만을 두고 쉽게 포기할만한 옵션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석유 1·2차 파동을 겪으면서 집단에너지를 도입했듯이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외적 환경이 특정 에너지원에 국한된 것이 아닌 에너지 생태계의 혁신을 요구하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지금도 집단에너지는 냉난방 부문에서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전력 부문에서의 신재생에너지처럼 말이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난방 대부분은 도시가스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가스는 화석에너지로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위험이나 고갈 문제에 항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유례없는 세계 천연가스 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이러한 소리가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디선가는 난방 부문의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있어야만 한다. 무뎌지고 있는 공급안보에 대한 감각을 조금이나마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집단에너지를 에너지효율뿐만이 아니라 난방 에너지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수단으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지금의 우리나라 지역난방 또한 대부분 천연가스에 의존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집단에너지는 열병합발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생 열에너지와 미활용 열원들을 통합해 저탄소 난방 시스템으로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지역난방을 위한 열병합발전 또한 지금은 오로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바이오연료나 수소로 연료를 전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집단에너지는 에너지효율 개선뿐만이 아니라 에너지전환 시대에 난방 부문의 탈화석화를 촉진할 수 있는 난방 시스템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정책적인 지원의 근거를 둘 수 있다.

물론 그동안 집단에너지 관련 정책과 사업 과정에 있어 많은 오류들이 있었던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집단에너지가 보다 미래 지향적인 난방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규제의 방향성을 가져가야 할 것이며, 기술혁신을 통해 신기술의 창출이 가능한 시장 여건도 제공해야 한다.

만일 지금의 난방 체계 하에서도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 요구에 부응할 수 있고 천연가스가 무궁무진한 자원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집단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필요 없다. 또한 에너지시장을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은 불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생각해 보라.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후 점차 드세질 온실가스 감축 압력과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의 천연가스 소비 추세가 가져올 천연가스 시장에 대한 영향 등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난방 체계가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음을 말한다.

유럽이 집단에너지를 지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원 근거를 에너지효율과 온실가스 감축에만 두고 있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난방 부문의 화석에너지 의존도를 줄여 에너지안보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2016년 2월 수립된 유럽 냉난방 전략이 EU 에너지안보패키지 내에 포함돼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네덜란드는 현재까지도 천연가스 순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천연가스 생산이 급감하면서 현재 주요 난방 방식인 가스 난방을 줄이고 집단에너지 보급을 늘려 난방 공급에서의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게도 적지 않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의 난방 정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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