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에 대한 방관은 원자력계의 잘못
타 에너지를 공생 아닌 경쟁으로만 봐 와

[에너지신문]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불리는 탈원전 정책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초기부터 제기됐던 오래된 국정철학 중 하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방향이기에 원자력에 몸 담고 있는 전문가들 조차도 부정하기 힘든 명제다.

1979년 쓰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대학생이던 나는 전공을 바꿔야 하나 고민했고,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나고 많은 사상자가 나오면서 당시 박사과정에 있던 와중에 ‘이제 원자력은 끝났구나’라고 낙담했던 기억이 난다.

이 시기에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나도 원자력에 대해 우려했고, 전 세계적으로도 원자력에 대해 주춤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시기는 급속도로 팽창해오던 우리나라 원자력이 원전기술 국산화로 나가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가 탈원전을 하던 시기에, 우리 원자력계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산업 성장에 필요한 값싼 전기를 만들라는 시대적 사명을 부여 받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두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방사성폐기물 사업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이 많았고, 시민단체의 위력도 커졌다. 당시 원자력계에도 여러 시련이 있었지만, 적어도 원자력에너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2009년이 돼서야 UAE 바라카 원전 4기 수주라는 원자력계 최대 경사를 맞이하게 됐다. 우리의 기술로 자립한 것을 넘어 수출까지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원전의 전력생산 비중을 60% 이상으로 높이고, 전 세계에 10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고 하는 자만심도 생겼다.

에너지정책, 이념적 철학에 좌우돼선 안돼
선거 공약 아닌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탈원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시기가 반핵운동가들이 반원자력운동가로 바뀌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고 ‘에너지 절약해 원전 하나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펼쳤고, 환경이라는 이름이 붙은 무수한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조직적으로 만들어졌을 때, 탈원전 운동의 기수들이 비로소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전기는 하나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그래서 사실 원자력의 혜택을 많이 받았던 서울시의 수장이 국가 에너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의 공포가 극에 달해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 당시가 대통령의 잘못된 공약이 탄생하게 된 시발점이라고 본다. 이제 어떤 점들이 대통령 공약에서 원전 축소를 넘어 탈원전을 과제화 시켰는지, 뼈아픈 반성을 해 보자.

첫째, 원자력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부풀려도 아무도 대들지 않다보니, 여론 몰이를 위한 공포 마케팅이 극에 달하게 됐다. 이런 공포감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라돈침대’ 사태다.

방사선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나온다. 우리의 법 체계는 매우 엄격해서 1mSv/yr를 초과하면 안전하다고 해도 수거, 폐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 실제로는 위해성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이 쓸데없는 공포를 갖게 됐다.

시민단체들은 학습을 통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만약에 만약을 더하며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방법을 체득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그릇된 철학을 갖게 됐다. 근거 없는 자료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일본이 방사능으로 오염됐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니는 것마저 국민을 위한 선이라고 믿게 만들었고, 소위 전문가들은 무시하며 내버려 뒀던 것이 잘못이었다.

둘째,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의 핵심은 태양광 보급사업을 확대하려는 의도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려면 전기를 모자라게 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원자력을 줄여야 한다는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 생겨났다.

태양광 보급의 적은 원자력이 아닌데도 신재생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원전이 없어져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가 시민단체에게 먹히고, 죽기살기로 원전 중단을 위해 시민단체들이 나서는 현재의 오류가 만들어졌다. 원자력계는 온실 속에 있으면서, 외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노력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 지금처럼 신재생의 확대를 위해 원자력계가 돕겠다는 의지가 표현됐야 했다.

셋째, 시민단체들의 오류는 신재생을 바라보는 무지에도 기인한다. 신재생의 확대가 가능하려면 발전장치와 에너지저장, 제어시스템 및 보급시범사업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골고루 발달해 준비가 돼야 가능한 것인데, 보급시범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니 시설용량은 확대 돼도 실제 발전량이 늘지를 않았다. 아직은 초기라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고 하더라도, 20%도 안되는 발전효율을 메꿔 줄 대체 전력이 준비돼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세일가스가 있고, 독일은 석탄이 있고, 스위스는 수력이 있고, 다른 국가들은 주변국가의 전력 공급선이 있다. 우리에게는 원자력 밖에 없는데, 원자력을 줄이면 그대로 국민세금의 부담을 초래한다는 단순한 수학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자력계는 타 에너지원과 공생하는 방안에 대해 눈을 감고, 경쟁 상대로만 봐왔다. 공생하는 관계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지금도 부족하다.

원자력계의 대부분은 언어적 의미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이 높은 석탄, 가스 같은 화석연료의 에너지 비중을 줄이자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를 늘리자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위험해서 국민들이 싫어하는 원자력의 안전성을 증대하고 불안한 노후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면 줄여나가야 한다는 데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수소나 핵융합 같은 미래의 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자는 의견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부가 내건 에너지전환정책은 사실 급속한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이미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신규원전 건설을 일시에 모두 취소하고, 60년이라는 시한을 설정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원전건설 수주시장에서 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던 한국수력원자력이 회사 이름까지 바꾸면서 변신을 꾀하려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국민투표나 공론화 없이 불과 1년 만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한국 국민들의 단결심을 높이 살 수는 있겠다. 이제 왜 이 정책이 폐기되거나 수정돼야 하는지 희망을 갖고 의견을 내려 한다.

첫째, 에너지 정책은 산업적 경쟁력의 관점에서 수립 돼야지 이념적 철학에 의해 좌지우지 돼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탈원전 운동의 뿌리는 독일의 그린피스 운동가들과 어느 정도 연결돼 있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독일을 따라가려는 의도를 자주 노출하고 있다. 그린피스의 문제점은 이미 정치 세력화 돼 이념적 편집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사회도 서로 보고 싶은 정보만을 취득하며 극한의 정치적 대립의 길로 나가고 있다. 산업정책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백년대계를 위한 에너지 정책에 정치가가 나서는 것은 어느 쪽이 이기던 불행이다.

지금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이념적 편향성이 없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양측의 전문가나 환경운동가도 동수로 참여케 해 건전한 토론 하에 정책이 수립되도록 허용해야 한다. 서슬 퍼런 정부 입김아래에서 아주 엉뚱한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에너지 정책은 정치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후, 사회적 파장을 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오랜 기간 논의를 통해 원자력, 신재생, 석탄, 가스, 에너지 절약을 같은 비중으로 가져가는 에너지믹스 정책을 수립했다. 이 결론에 아쉬워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극한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고, 산업체가 충격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원자력의 비중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이런 에너지믹스 정책은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아야겠다고 아우성치는 일은 만들지 않는다. 중국에서 원전이 100기가 돌아가는데, 우리나라에서 24기가 16기가 된다고 얻을 이득은 없다. 탈원전은 정치적으로 표를 얻거나 잃을 수 있지만, 에너지믹스는 정치적인 득실이 없는 것이다.

둘째, 에너지 정책은 국가와 국민의 선택에 기반을 둬야 한다. 지금 우리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지, 국민들의 합의가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에 대한 공론화 숙의토론이 유일한 토론의 장이었는데,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건설재개에 손을 들었다.

이 결론을 바탕으로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건설 여부를 국민들이 지지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애써 공론화 토론을 피하고 있다. 학회가 전문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한 국민인식도 조사에서는 10명중 7명이 원전 확대 및 유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탈원전 정책은 국민 동의 없이 5년 안에 결판을 내려는 성급함에서 초래됐다. 많은 이들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탈원전 정책에서의 속도 조절은 신규원전 지속 건설과 노후원전 조기 폐쇄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굳이 표현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은 외국의 원전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국내 경기가 불투명한 시점에 애써 가꿔 온 원전 수출시장을 스스로 포기할 수는 없다. 탈원전이나 원전건설 중지를 위해서는 사실상 법적 절차나 국민 투표가 필요하지만, 건설 재개는 대통령의 선언 한마디로 족하다. 잘못된 정보에 의한 그릇된 선거공약은 부분적으로 취소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원전이 증가 혹은 감소한다는 상반된 주장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나라마다 사정에 따라 늘어나기도, 감소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에서도 원전이 급격히 줄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원전은 충분히 안전하게 운전될 수 있으며, 인류는 이제 그만한 실력을 갖추게 됐다. 세계적인 추세는 인류의 전기 사용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원자력 발전은 몇몇 나라들에게만 가능한 에너지라는 점이다.

따라서 원전 수출 시장은 커지고 있으나, 많은 제약조건으로 몇몇 나라에서만 확대될수 밖에 없다. 말레이시아는 석유, 가스가 풍부하지만 의지가 부족하고 사우디는 석유가 훨씬 많지만 원자력에 욕심을 낸다. 선진국들 중에서는 독일을 제외하면 모두가 원자력을 미래의 에너지로 여기며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온실가스 저감 의무를 강화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을 늘려야만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또 12월 13일에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 회의장에서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 등 해외 환경단체들이 국내 시민단체와 연합해 한국의 석탄 사용증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세계적인 조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자력이 환경 개선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탈원전은 피치 못하게 온실가스 확대를 불러 온다는 사실을 지목하고 있다.

미래 기후 온난화를 대비하려면 원자력을 적절하게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 원전 보유국의 공통된 입장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현재 국제 외교에서 탈원전을 했다고 칭찬받고 있지 못하고 있며, 앞으로도 칭찬 받을 일은 없다. 독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비난받고 있는 상황이다.

넷째, 에너지는 국가의 사정에 따라 달리 선택돼야 한다. 에너지를 선택할 때는 과학적인 통계에 근거해 각 에너지원의 장단점을 나라의 형편과 사정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 판단의 지표는 안전성, 경제성, 자원안보성, 환경친화성 등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이 안전하고, 가장 싸고, 가장 공급 안정성이 뛰어난 국산 에너지다. 환경친화적 측면에서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남아있지만, 기술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극복 가능한 사회적인 문제일 뿐이다.

2017년 10월 유럽수출 모델인 EU-APR이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했으며 APR1400은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을 지난해 10월에 받았다. 이는 우리 원전이 전세계의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통과한 가장 안전한 원전이라는 뜻이다.

가스는 전량 수입해야 하므로 액화시켜 배로 수송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비쌀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러시아 가스를 북한을 통해 가스관으로 수입하자는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두 나라를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면 공급에 관한 자원안보는 어렵게 된다. 가스 저장탱크의 안전성 기준은 원자력 발전소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는 가스저장의 안전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않는다는 뜻이다. 환경면에서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방출도 피할 수 없다. 석탄은 환경면에서 점차 애물단지가 되고 있으나 가장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싸게 공급하는 수단이다. 수입선이 다변화돼 있어 자원안보성도 나쁘지 않다.

신재생 중에서 현재 그나마 경제성의 가능성을 갖춘 에너지는 풍력과 태양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에 비해 경제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경제성의 향상은 패널 값 하락으로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미 중국 업체에 밀려 한국 토종업체가 망해간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땅값이 비싸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태양광 발전단지와 풍력 발전단지의 부지를 못 구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미 예상됐던 문제다. 발전 효율성과 간헐성을 메꿀 에너지 저장장치(ESS)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국 1253개 시설 중 16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정부가 ESS 가동 중지를 내린 상태다. 보조금에 욕심을 낸 사업자들이 ESS 설치를 과도하게 하면서 품질 인증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어느 것 하나 신통한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꼭 집어 원자력과 석탄을 없애겠다고 하고, 신재생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석탄과 가스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에너지전환 정책의 현실이다. 현 상황은 과도기적으로 나타난 것이며 차차 개선해 가겠다고 하는 것이 정부의 답변이다. 이 모든 것이 원자력을 급격히 줄이지만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상황이다.

결국 4~5개 가운데 1~2개를 고르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1년여의 실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본다. 4~5개를 계속 가져가면서 천천히 전환하도록 하는 정책이 국민 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모두에게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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