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부교수(주)제드엠제이 건축사사무소 부설 제로에너지기술연구소 겸임소장

 

독일 건축물리(Bauphysik)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열보호(Waermeschutz)’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열을 보호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물을 다루면서 열을 이야기 하는 것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저명 DETAIL 건축잡지에는 ‘열(Waerme)’이라는 단어가 매우 자주 등장한다.

‘열을 다룰 줄 아는 자가 건축가’라는 명제에 많은 분들이 반론을 제기 할 수 있겠지만 에너지자립형(제로에너지) 건축물을 보편화 시키고자하는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열에 대한 논의가 건축가들 사이에서 일상이 돼야 한다.

인간을 위한 건축물 이라면 실내온도유지와 환기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36.5℃의 체온과 신선한 산소공급이 필요한 인간에게는 덥고 추운 집이 아니라 시원하고 따뜻한 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쾌적한 건축물은 어떤 물리적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할까. 먼저 실내온도 20~22℃, 벽체표면온도는 16~18℃, 바닥온도는 22~24℃, 상대습도는 60%, 공기의 흐름은 0.2m/s를 유지시켜야 한다.

인간은 건축물 내에서 열전달(전도, 대류, 복사)방법을 통해 공간을 둘러싼 부위들과 서로 열을 주고받으며 열을 느낀다.

열을 품는 건축물은 끊임없이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어떠한 형태와 볼륨, 어떠한 외피로 구성되든지 건축물이라면 위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뒤에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는 유리건축물을 보자. 유리건축물이 ‘에너지 먹는 하마‘라고 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지어지고 있다.

여름철 실내온도가 26℃일때 유리건축물의 유리벽 표면온도를 10℃ 이하로 낮출 수 없다. 전도율이 높고 단열성능이 떨어지는 유리표면온도가 외부온도로부터 영향을 받아 더는 차가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겨울철 실내온도가 20℃일 때 실내 벽체표면온도는 최소한 16℃ 이상이어야 하지만 실내측 유리면의 표면온도는 외기온도만큼이나 차갑다. 설상가상으로 틈새바람까지 합세하면 사무실의 실내온도는 혹독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직장이 유리건축물이라면 작업능률 및 실내공기질 저하, 더 나아가 근무자의 삶과 건강의 적신호는 갈수록 더 붉어질 것이다.

지금껏 국내 건축물은 건축가가 건축물 표피를 디자인하고, 쾌적함은 건축설비엔지니어가 만든다는 개념으로 건축설계를 진행시켜 왔다. 건축가의 디자인이 유리건축물과 같이 다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각 분야 설비 엔지니어가 그 건축물에 난방, 냉방, 조명, 환기, 급탕을 정확히 설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고유가와 그로 인한 냉난방비 상승이 임대자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분양·임대시장에서 ‘비분양과 공실’이라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싸게 빨리 짓고 분양하면 끝’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야한다. 분양과 임대가 되지 않는 건축물이라면 그 이유가 있다.

임대자에게 냉난방비에 대한 부담과 근로자들에게 있어 근로환경은 회사를 경영해 본 사람이라면 흑자경영을 만드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21세기는 에너지와의 전쟁이다. 그렇다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단 몇 시간의 Blackout의 기억을 잊지말아야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에 건축물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최고의 설계기술과 자재, 시공기술을 찾아내야 한다.

최고의 기술이 보편적이고 경제성이 있는 기술이 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뜻을 모아야 할 때가 왔다. 에너지절약형 건축물과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검증되면서 이 나라는 건축복지문화를 창출할 것이다. 그 중심에 건축복지문화를 선도하는 ‘열을 다루는 건축가’만이 글로벌 리더로 재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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