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영국은 1956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건설했고, 일본에 원전을 전수한 상업용 원전의 기술 선도국이었다. 또한 핵 재처리 공장들을 포함한 연료 처리를 위한 모든 과정의 시설들을 보유하고, 얼마 전까지도 일본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했다.

하지만 영국 신규 원전 건설이 계속 지연되면서 가장 최근에 지은 원자력 발전소는 1995년 Sizewell B다. 신규원전을 지은 지 이미 23년이 지났고, 그 기간 신규 건설 물량이 없다 보니 현재 영국 신규 원전을 자체 건설할 원전 Supply Chain이 약해져 있다.

정부나 보수당과 노동당 그리고 자유민주당 등 대부분의 군소 정당들과 국민들 대다수도 친 원전을 선호하고, 정부도 원전을 부활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번 사라진 산업기반을 다시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영국은 계속 친원전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전력시장 민영화 이후, 영국의 신규원전 3 컨소시엄(EDF&CGN, Horizon, Nugen)은 프랑스, 중국, 일본의 외국 전력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EDF&CGN 컨소시엄은 2008년에 영국 정부가 허가한 원전인데, Hinkley Point C에 3.2GWe 용량의 유럽형 원전(EPR)을 지어 600만가구에 60년 동안 청정 전력을 공급하는 프로젝트다.

2만 5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는 이 프로젝트에는 £203억파운드(약 30조원)가 투자되는데, 이 대규모 투자에 대한 원리금과 적정 이윤 회수를 위해 이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에 대해2012년 기준 £92.50/

MWh(13만 5493원)의 가격을 35년간 보장한다. 이 가격은 현재 전력 도매가의 2배에 달하고, 영국 정부 직접 차입 금리가 2%인데 프로젝트에 반영된 금리는 9%여서 소비자들에게 £500억파운드(73조원) 이상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미래 전력가격 예측은 어렵지만 신재생 전력 공급 설비 건설비와 CFD 및 용량 입찰 및 낙찰가격들이 계속 낮아지는 데 반해, 이 보장 가격이 너무 높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았다. 또한 전력산업의 민영화로 신규원전 건설 및 운영을 민간에만 의존하다 보니, 전력 수급 정책이 민간 전력 사업자의 영리에 볼모가 되어 원활한 전력 수급을 계획하고 수행하기도 어려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신규원전 건설 사업자에 금융과 보증을 지원하여 민간 원전 사업자의 수익 및 위험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면서, 프로젝트의 의사결정에 정부가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RAB(Regulated Asset Base)모델을 준비 중이다.

한편 한전이 인수하려는 뉴젠은 2009년에 프랑스의 ENGIE(이전 GDF Suez)와 스페인의 Ibedrola 그리고 영국의 SSE가 공동 투자해서 3.6GW의 원전을 짓기로 한 원전 프로젝트다. 2011년에 SSE가 지분을 ENGIE와 Iberdrola에 팔면서 이 지분을 매수한 두 회사가 각각 50%씩 지분을 소유했다. 그 후 2013년 말에 일본 Toshiba가 Iberdrola와 ENGIE로부터 뉴젠 지분 60%를 샀는데 2017년 초에 도시바가 미국 원전 건설 지연과 부실자산증가로 재정위기에 빠지자, ENGIE는 나머지 보유지분 40%를 매도옵션을 통해 도시바에게 팔았다.

그 후 2017년 말에 도시바가 이 뉴젠 지분 100%를 팔려고 한전을 우선 협상자로 지정했는데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2018년 8월 한전의 우선 협상자 지정을 해지했다.

영국 원전은 완전 민영화된 시장이어서 영국 정부가 원전 사업자 간 거래 자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 프로젝트 인수는 사업자간에 협의가 돼야 하고 노형평가, 인허가, CFD의 Strike Price결정, 금융지원이나 보증 등은 정부와 협의해 결정해야 된다.

Horizon 컨소시엄은 원래 독일 전력회사인 RWE와 EON이 추진하던 신규원전 프로젝트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정부가 탈원전을 선택하자 독일 전력회사인 RWE와 EON도 추진하던 영국 신규원전 프로젝트인 Horizon에서 철수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일본의 히타치에 매각됐다.

반면 한국 정부는 탈원전을 표방하는데, 한국 정부가 최대 주주인 한전은 이와 반대로 신규 원전을 추진한다고 한다. 영국 정부나 다른 시장 참여자와 소비자들은 어느 쪽 시그널을 믿어야 할지 당연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EDF의 신규원전 컨소시엄에 참여한 중국도 초기에 원전 신규 건설 및 운영 능력을 의심받았지만 적극적인 투자와 홍보로 중국 원자로의 영국 진출을 이끌어 냈다. 우리는 중국보다 훨씬 좋은 신규 원전 건설 실적과 원전 산업 여건을 가지고 있고, 영국 정부나 국민들도 중국원전보다 한국원전에 더 신뢰를 보인다.

물론 영국과 한국은 동서양의 지역적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나 문화, 법률, 제도, 사고 등 확연하게 드러나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영국 신규 원전 컨소시엄들은 민영화된 시장원리에 따라 모두 자기 책임하에 모든 위험을 부담하며 운영된다. 따라서 정부가 이들 전력업체의 수익을 보장하지도 않고, 이들 전력업체의 경영에 간섭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EU 차원에서는 여러 형태의 정부지원(State aid)을 불공정행위로 간주해 이를 금지하거나 불이익을 주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 통제와 주도하에 공기업인 한전에 의해 전력사업이 운영되고, 한전 자체적으로 책임지고 결정하거나 운영할 수도 없다. 해외사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투자심의 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위험이 회피돼야 하고, 확정된 수익이 보장되어야 하니 결국 입찰형 프로젝트만 추진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경쟁이 과열된 민영화된 신규 원전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저가나 저리로 입찰해 경쟁할 수도 없다. 설사 억지로 출혈 경쟁해서 프로젝트를 획득한다 해도 손해가 불 보듯 뻔하다.

EDF는 2009년 £124억파운드(18조원)를 투자해 영국 원자력 발전소들을 운영하던 British Energy를 사들인 후 주변국, NGO의 반대와 소송, EU와의 정부 지원 문제 해결, 소비자, Strike Price 협상, 정부 보증, 야당과 소비자 단체, 미디어의 보장가격에 대한 비난과 반대 등에 대해 7년여에 걸친 끊임없는 홍보와 설득 노력을 통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원전 인수 비용을 제외하고도 순수하게 Hinkley Point C의 개발을 위해 최소한 £30억파운드(4조 3000억원)는 프로젝트 개발 비용으로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뉴젠 성공의 열쇠도 결국 한전이 도시바와 영국 정부, 국회, 소비자, 환경단체 등의 반대를 잘 설득해 얼마만큼의 유리한 가격과 조건을 얻어 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전이 과연 EDF처럼 자기 책임하에 개발비용까지 쓰면서 능동적으로, 또 자주적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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