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혁신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에너지신문] 올해는 유독 폭염 및 폭우가 빈번한 여름이었다.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소(Centre for Economics and Business Research)에 의하면, 이러한 이상 기후현상으로 올해 영국의 장바구니 물가가 최소 5%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의 주요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틴들 기후변화 연구소(Tyndall Centre for Climate Change Research)의 기후과학자들은 이러한 이상 기후현상이 인간이 만든 온실가스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청정에너지의 확산 및 에너지 효율 향상은 시급한 일이다. 청정에너지를 확산하고 에너지 효율 제품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에너지 효율 제품을 구매해야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가령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2개 나라와 유럽연합이 ‘미션 이노베이션’을 발족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클린 에너지 공공 및 민간 부문 RD&D (Research Development & Demonstration)를 2016년 대비 2배 가까이 늘리고자 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도 석탄·원전 중심의 에너지원 포토폴리오에서 신재생에너지 등으로의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에너지 혁신’이란 상당히 복잡한 현상으로 무조건 R&D 투자를 늘린다고 해 에너지 혁신 기술이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는 보장은 없다. 혁신이란 본래 상당히 리스크가 큰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학계에서는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적 접근법(Neoclassical economics)과 시스템적 관점(Innovation system)이 그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시스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자들 사이에는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 의견이 서로 다르며 서로 구사하는 학문적 언어도 다르다. 서로가 기반한 학문적 이론적 배경이 다르기에 환경에너지 정책적 제언도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이에 정책입안자들은 두 관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돼야지 보다 효과적인 환경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 미션 이노베이션 정책 자문 워크샵 참석차 브뤼셀 유럽의회.

◆주류 경제학적 접근법

환경에너지 정책의 목표 중 하나는 지속 가능한 청정기술 개발 및 보급을 통해 인체에 유해한 물질들을 줄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환경에너지 정책을 분류하는 방법 중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 중심의 환경정책(Marked-based environmental policy)과 비시장 중심의 환경정책(Non-market-based environmental policy)이 있다. 시장 중심의 환경정책이란 가격정책을 사용해 부정적인 외부효과(Externality)를 내재화하는 정책들을 일컫는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유해한 오염물질들이 적절하게 가격이 매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 및 기업들이 오염물질을 줄일 경제적인 유인(Incentive)이 없다고 본다. 실례로 탄소세 및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오염물질의 가격을 변화시켜서 경제주체에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는 시장 중심의 대표적인 환경정책이다.

이에 반해서 통제 명령 접근법은 주어진 환경규제를 따르지 않을 경우 벌칙을 받게 되는 규제 방식의 환경정책을 일컫는다. 가령 EU는 유럽시장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설정해 이 규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과징금을 무는 것이 이러한 규제 방식에 해당한다.

환경경제학에서 가장 큰 학문적인 발견은 시장 중심의 환경정책이 규제 방식의 환경정책보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비용 효과적이라는 것에 있다. 이는 시장 중심의 환경정책이 규제 방식보다 경제주체에게 더 큰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학적 발견은 에너지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유효하다. 즉 탄소세 혹은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통해서 에너지 가격에 온실가스 및 오염물질의 가격을 반영할 수 있다면, 경제주체들은 인센티브를 가져서 보다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을 만들 유인이 있으며, 소비자들은 그러한 제품을 사용할 경제적인 유인이 있다.

물론 이러한 경제적인 유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에너지효율 제품을 널리 사용하지 않는 현상을 ‘에너지 효율 갭(Energy-efficiency gap)’이라고 부르며,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가정을 완화하면서 시작하는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비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에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R&D 투자 혁신 보장없어…이해 선행해야

혁명이냐 점진적 변화냐, 논의·합의 필요

▲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 위치한 틴들 기후변화 연구소.

◆시스템적 접근법

시스템적 접근법은 환경 및 에너지 문제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시스템적 사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며, 사회문제가 선형이 아닌 복잡계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이에 다양한 경제주체 및 비경제주체들의 네트워크 및 관계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또한 시스템 혁신은 혁신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혁신 프로세스에 대한 지속적인 매니지먼트도 중요하다고 본다. 즉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시스템은 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흘러야지 그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시스템에서 소비자의 피드백과 역할을 에너지 혁신이 널리 보급되는 데 중요한 요소로 보며 이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올해 British Institute of Energy Economics에서 주최하는 학회의 주요 테마가 ‘에너지 시스템에서의 소비자의 역할’인 것을 보아도 학계 및 산업계에서 그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너지 혁신도 시스템적인 접근법으로 관찰해 보면, 에너지 전환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을 쉽게 바꾸기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 때문에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석탄·원전)에 갇히는(Lock-in) 경우도 많고, 다른 경제주체(가령 화석연료 및 내연기관에 기반한 회사)들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는 에너지 전환이 더디기만한 한국 사회를 보아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시스템 혁신은 기존의 시스템을 바뀌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령 서비스형 모빌리티(Mobility-as-a-Service: MaaS)와 같은 기존의 교통 시스템을 바꿀 비즈니스 모델 같은 경우는 이러한 예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파괴적 혁신 위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점진적인 에너지 전환을 조금씩 이루어나갈 때 에너지 전환을 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 틴들기후변화연구소는 올해 폭염이 온실가스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두 가지 관점이 주는 시사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너지 혁신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모두 유용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비용효과적인 환경에너지 정책에 대한 꾸준한 정책 입안 및 수정·보완 작업은 에너지 혁신에 가장 큰 경제적인 유인을 제공해준다. 시스템적인 접근법은 주류 경제학이 놓치기 쉬운 비선형성 및 경로 의존성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공급 위주의 에너지 정책이 여태까지 주를 이뤘다면,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 에너지 효율 정책에 대한 논의는 시스템 혁신 학자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강조돼 온 정책적 수단이다.

환경에너지 정책 입안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관점 모두 고려해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적인 변화 시켜 나가야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에 혁명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참여 속에서 논의 및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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