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

[에너지신문]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됨을 버리고 올바름을 좇아야 한다는 말이니, 신재생만 두둔하고 원자력은 무시한다면 국가 발전(發電) 백년대계가 바로 서기 힘들다. 도도한 4차 산업의 길목에서 안전과 청정과 민생을 앞세우는 문재인 정부의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몇 달도 안돼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와 사전에 계약한 기업이 전기를 아껴 쓰면 보상해주는 전력수요 감축요청은 제도 도입 후 세 차례에 불과하던 게 올 겨울에만 여덟 차례에 달했다. 급전지시가 나오면 공장을 세워야 한다. 급전지시가 잦아지면 기업반발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일단 멈추면 예열 등으로 반나절은 재가동이 힘들고, 때론 납기를 놓쳐 손해를 볼 수 있다.

전력예비율은 탈원전에 초점을 맞춘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신인도와 직결된다. 정부는 8820만kW였던 최대 전력수요를 8520만kW로 낮게 잡았다. 수요가 떨어졌으니 원자력을 줄이고 신재생을 키운다는 논리다. 하지만 비뚤어진 흑백논리, 신재생은 되지만 원자력은 안 된다는 어불성설이 문제의 발단이다.

전원에는 선악도 호불호도 있을 수 없다. 평등무차별한 이치로 따져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만사에 완전한 것도 없다. 신재생이든 원자력이든 시장원리에 따라 적자생존하고 자연도태하는 것이다. 찬반 양측의 생각을 헤아리고, 때론 해외에서 날아온 편지도 읽어야 한다. 사람에겐 귀도 둘, 눈도 둘이지만 입은 하나, 그만큼 많이 듣고, 멀리 보되 말은 줄이라는 것이다.

칠색조, 보는 각도에 따라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깃털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칠색이 모여야 빛이 되듯이 에너지도 마찬가지. 태양, 풍력, 수력, 석탄, 석유, 가스, 원전 모두가 신토불이 황금률을 이뤄야 비로소 빛을 낸다.

세계는 햇빛과 바람에서 전기를 빼내기 위해 우리나라 1년 예산의 5배를 10년 넘게 쏟아 부었다. 현재까지 전세계 원전 건설비용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그간 신재생 에너지 증가폭은 다른 모든 에너지 원을 월등히 앞지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 10년 전 예측의 10배가 넘는 것이다. 그럼에도 탄소배출량은 거의 줄지 않았다. 녹색 에너지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지난 10년간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독일에서 보인 부진한 실적은 신재생을 늘림과 동시에 원자력을 줄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전 대신 화력을 폐쇄했더라면 신재생이 반사효과(反射效果)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원자력이 엄청난 초기비용과 함께 불안과 불신이라는 크나큰 걸림돌에 막혀있는가 하면 신재생은 원자력만큼 기저부하를 감당하지는 못한다. 신재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정부의 최대 난제는 천문학적 비용과 불확실성이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 때만 전기가 나오기 때문에 당분간 가스발전소를 증설하고, 장기적으로 대용량 축전지를 개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전기료의 대폭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전기를 버리자니 석탄이나 가스를 다시 찾게 될 것이고, 이는 전력수요가 폭등할 4차 산업의 한가운데 탄소배출이 반등하는 악의 고리를 되풀이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예상보다 많은 난관에 부딪칠지도 모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지금보다 몇 배의 투자를 꾸준히 해야만 지구평균기온을 붙잡기로 한 국제사회의 목표를 달성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단순히 금원(金員)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원자력과 신재생의 호혜를 기본철학으로 8차 전력수급계획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그릇됨과 올바름 사이, 탈원전을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의미심장한 말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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