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 수출, 2리터 생수병 280억개…높은 정제마진이 생산·수출 영향끼쳐

[에너지신문] 2017년 3분기는 국내 정유사에게 큰 호재를 가져다 줬다.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가동 중이던 미국 정제시설이 멈춰 석유제품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원유공급 자체는 지속적인 공세를 이어가면서 저유가 기조가 유지됐기 때문.

하지만 2017년 국제유가가 서서히 고유가로 진입해 들어가면서, 풍부한 제품시장과 저유가라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누려왔던 국내 정유사들의 사업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 됐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의 비정유 부문 즉, 석유화학 부문의 영업이익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석유화학 업종으로 체질변화를 시도하는 정유사들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해보자.

▲ 석유화학 생산을 위한 S-OIL 온산공장의 '제2아로마틱 콤플렉스'(사진 왼쪽)와 울산시에 위치한 40만평 부지의 S-OIL 정유ㆍ윤활공장(사진 오른쪽)

■ 정유업계, 3분기 석유제품 수출량 역대 최고치 경신

정유업계의 호재가 계속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불안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가 신사업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정유업계의 2017년 3분기 누적 석유제품 수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한석유협회는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가 3분기까지 수출한 석유제품이 2016년 같은 기간 보다 1.5% 증가한 3억 5223만배럴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였던 2016년 3분기 누적 수출량 3억 4719만 5000배럴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정유업계가 3분기까지 수출한 석유제품은 63빌딩을 51번 채울 수 있는 규모로 2리터 생수병에 넣을 경우 약 280억개에 해당한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최대 석유제품 수출국은 여전히 중국으로 나타났다.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전체 석유제품 수출량의 20%인 약 6876만배럴을 수출했다.

뒤이어 싱가폴(12%), 호주(11%), 일본(9%), 대만(9%) 등 56개국에 수출했다.

특히 3분기 수출량만으로 볼 때 호주로의 수출량은 1429만배럴로 국가별 비중 12%를 기록해 분기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싱가폴을 제치고 2위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호주는 정제시설 노후화에 따른 정제설비 폐쇄가 이뤄지고 있고, 부족한 제품을 싱가폴, 한국 등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호주로의 수출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제품별로는 경유가 전체의 36%인 1억 2756만 7000배럴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항공유(22%), 휘발유(17%), 나프타(9%) 순으로 고부가가치 경질유 위주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항공유는 전체 석유제품 수출증가율 1.5%의 두 배를 웃도는 3.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항공수요 확대로 미국, 호주, 중국 등에서의 수요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 정유업계 3분기 석유제품 수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 S-OIL 공장 가동률 98.5%로 국내 최대

이 같은 석유제품 수출에 힘입어 S-OIL 정유부문의 3분기까지의 공장 가동률은 98.5%로 국내 정유업계 중 가장 높은 가동률을 기록했다.

S-OIL 정유부문의 공장 가동률은 3분기 기준으로 2014년 93.8%, 2015년 97%, 2016년 96.6%, 2017년 동기 98.5%로 상승세이며, 2017년에는 2014년에 비해 4.7%포인트 높아졌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 계열사인 SK에너지 역시 2017년 96.4%의 높은 공장 가동률을 나타냈다. SK에너지의 공장가동률은 2014년 89.6%, 2015년 94.2%, 2016년 94.8%, 2017년 96.4%를 기록했다.

GS칼텍스의 정유 부문 공장 가동률은 2014년 86.1%에서 2017년 93%로 6.9%p 올랐으며, 현대오일뱅크의 공장 가동률 역시 2014년 83.76%에서 2017년 96.41%로 12.65%p 증가했다.

정유사의 공장 가동률이 높아진 것을 업계는 정제마진이 좋아진 덕으로 풀이하고 있다. 원유를 사서 정제할 때 남는 차익인 정제마진은 정유사의 실적과 직결된다.

이 같은 석유제품 수출증가는 △세계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 △허리케인 하비에 따른 미국 정제시설 일시적 가동중단 △글로벌 정제설비 신증설 지연으로 인한 수출여건 개선 등이 이유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 4사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의 2017년 3분기 영업이익의 합은 2조 370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9821억원에 비해 141.3%(1조 3880억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가동된 공장에서 생산된 석유는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6.4% 증가한 3억 800만배럴을 기록했다.

납사·항공유의 생산량은 각각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21.3%, 8.7%로 크게 증가했다. 납사의 경우 석유화학 산업 수요가 증가해 콘덴세이트 정제시설 가동이 확대됨에 따라 생산량이 급증했으며, 항공유는 국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3%로 작지만 미국 등 해외 수요 증가에 대응해 생산량은 증가했다.

휘발유의 경우 중유에서 휘발유 등 경질유를 생산하는 현대오일뱅크 고도화시설의 유지보수로 생산량은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2.5% 감소했다.

석유제품 생산량 증가가 수입을 대체하면서 수입은 7700만배럴로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12.5% 대폭 감소했다.

66.3%로 석유제품 수입량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납사는 석유화학설비 증설에 따른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납사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량이 5100만배럴로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6.0% 감소했다.

국제가격 상승으로 인해 산업용·수송용 액화석유가스(LPG) 소비가 감소해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18.4% 감소한 1800만배럴을 기록했다.

벙커C유는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34.6% 감소한 700만배럴을 기록했는데, 이는 발전용 유류 수요 급감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생산 감소로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휘발유 수입량은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103% 급증한 48만배럴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대만에서만 휘발유를 수입했지만 2017년은 대만 외에 중국과 일본에서도 휘발유를 수입한 것으로 파악했다.

석유제품 수출량은 항공유와 경유를 중심으로 2016년대비 3.9% 증가해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으며, 수출액은 수출량 증가와 함께 유가 상승으로 2016년대비 29.1% 증가한 92억 달러를 기록했다.

대만으로 선박용 경유 수출이 급증했고, 정제시설이 부족한 對필리핀·호주·앙골라 수출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경유 수출은 2016년대비 4.3% 증가했다.

2017년 8월 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으로 미국 내 일부 정유시설의 가동이 중단돼 대미(對美) 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항공유 수출은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9.4% 증가했다.

휘발유 수출은 베트남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 감소로 수출 여력이 축소돼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2.0% 감소했다.

납사 수출은 대(對) 중국 수출 증가와 국내 생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 증가로 수출여력이 감소해 수출량이 2016년 같은 기간 대비 8.5% 감소했다.

▲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ㆍ윤활유 사업이 2분기 연속 30%가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 SK이노베이션, 영업이익 77% 증가

정유업계 호황 속에서 금융시장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 4분기 922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감안한 SK이노베이션의 2017년 총 영업이익은 5조 7400억원이다. 2016년 연간 영업이익 3조 2283억원 대비 77.8% 증가한 수준이다.

S-OIL의 경우 2017년 4분기 영업이익은 458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에 따라 S-OIL의 2017년 총 영업이익은 2016년보다 28.5% 증가한 2조 24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지난 2014년 저유가 사태로 각각 1828억원, 289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3년 만에 역대 최대실적을 경신하면서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크게 다르지 않아 GS칼텍스는 2017년 3분기까지 1조 3734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GS그룹 전체 실적을 이끌었다. GS칼텍스의 2016년 영업이익은 2조 1404억원이었다.

현대오일뱅크도 2017년 들어 859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으로 기록된 2016년 영업이익 9657억원에 바짝 다가선 금액으로, 사실상 최대 실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의 기름값 상승세로 인해 업계 관계자들은 난감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현재 휘발유 가격은 19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산유국이 원유공급 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OPEC은 3월까지 하루 18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한 결정을 12월까지로 연장했다. 또한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부분 가동 중이었던 멕시코만 항구의 미국 정제시설 가동이 정상화됐다.

보통 3분기는 난방유 수요 감소로 전통적인 비수기로 꼽힌다. 그럼에도 호실적을 기록한 것은 1배럴당 30~40달러에 머물렀던 유가가 50달러 선까지 오른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런 현실에서 난방이 필요한 겨울을 앞두고 유가가 60달러 언저리까지 올랐다는 것은 정유사 수익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가상승은 정유사에게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정유사가 가공해 판매하는 석유제품의 가격도 오른다. 가격이 낮았을 때 미리 사놓았던 원유를 재료로 쓰기 때문에 이익은 커지게 된다. 실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지난해 2분기 배럴당 5.7달러 수준이었던 정제마진이 3분기 들어 배럴당 9.3~11.3달러 수준으로 크게 상승했다.

문제는 유가가 너무 오르면 수입단가 상승으로 부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가격이 비싸진 석유제품 수요가 줄게 된다.

S-OIL 영업이익의 40% 비정유가 차지

‘꾸준히 R&D에 투자해온 결과’ 평가

■ 안주 않는 정유업계, 석유화학으로 뛰어든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호재에 안주하지 않고 비정유 부문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전체 영업이익의 48.7%를 석유화학 및 윤활유 사업에서 거뒀다. 지난해 누적 영업이익으로 보면 석유화학·윤활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2%에 달한다.

가장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인 S-OIL은 영업이익의 40%를 비정유 부문이 책임지고 있다. 이 중 윤활유와 석유화학 매출은 전체의 21%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에서는 40% 가까이 차지한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윤활유 부문은 2분기 연속 3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나타냈다.

반면 GS칼텍스는 3분기 전체 영업이익 중 73.8%가 정유사업에서 발생해 석유화학·윤활유 부문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익 성장률 역시 4개사 가운데 가장 낮아 76.8%에 그쳤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2016년 동기 대비 132.2%, S-OIL은 376.1%, 현대오일뱅크는 121.7%씩 성장했다.

이 같은 석유화학 사업의 호황은 기본적으로 원유 정제 부산물을 이용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화학업의 특성상 영업이익률이 정유보다 높은 데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유사들이 국제유가 등 변동요인이 많은 정유사업에서 석유화학 사업으로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SK이노베이션은 정유기업에서 종합에너지·화학기업으로 바꾸겠다는 ‘딥체인지2.0’을 추진하며 비정유 부문에 대해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1조 6000억원을 투자해 파라자일렌 생산라인 130만톤 증설을 선제적으로 단행, 국내 1위 생산능력(연산 260만톤) 체제를 갖췄다. 이를 통해 2017년 PX시황 개선을 실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하게 NCC(나프타분해설비)를 갖춘 점도 화학 약진의 바탕이 됐다.

특히 S-OIL은 지난 몇 년 동안 석유화학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 왔다. 2015년부터 4조 8000억원을 투자한 정유 석유화학 복합시설인 잔사유분해시설(RUC), 올레핀하류시설(ODC)을 2017년 상반기 준공할 예정이다. 신규설비가 가동되면 석유화학, 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 비율은 현재 14%에서 19%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OIL의 신규설비 가동으로 고부가 폴리프로필렌(PP)·산화프로필렌(PO)을 생산해 제품이 다양화되고 수익성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PP는 자동차와 가전제품 내외장재로 사용되며 PO는 자동차 내장재와 냉장고 단열재 등에 이용되는 부가가치가 높은 화학제품이다.

현대오일뱅크의 NCC 진출에 대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현재 화학업체에 나프타를 공급하기 때문에 NCC설비를 갖추면 언제라도 에틸렌 생산에 돌입할 수 있다. 에틸렌은 유화제품 대부분의 기초원료로 쓰여 화학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은 원료이다.

GS칼텍스에서 내부적으로 NCC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이 들리지만 공식적인 코멘트는 없다.

이 같은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업계 투자에 석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 뿐”이라며 “신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R&D에 투자를 해온 결과가 오랜 시간을 걸쳐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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