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연구실장ㆍ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전력시장 자유화는 ‘변질된’ 시스템 개혁

[에너지신문] 부존자원이 없어 수출에 의존하고, 높은 산업용 수요 충족을 위해 원전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전력 상황은 상당히 유사했다. 그러나 일본은 동일본 50Hz, 서일본 60Hz로 주파수가 다르며 민간 전력회사가 지배하는 10개 지역 간 계통 연결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무엇보다 공적 체제 하에서 전기가 공공재로 강하게 인식되고 정착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뿌리 깊은 민간 지역 독점체제로 인해 그 어떤 국민도 전기를 공공재로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나라다.

석탄, LNG 등 전력의 연료원 수입조건이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2배 그 이상이다.

한국은 1998년 이후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고 이 때문에 한전에서 6개 발전회사를 분할했다. 2003년 민영화가 중단돼 전력산업 전반은 여전히 공공적 소유형태로 존재하지만, 전체 전력 중 30% 이상은 SK, 포스코, GS 등 재벌기업이 이미 진입한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의 전력정책을 구조개편 혹은 민영화·시장화 정책이라 부른다.

이와 달리 일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자유화(Liberalization) 혹은 시스템 개혁(System Reform)이라 한다. 이미 민영화된 상황에서 지역독점 민간기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재편하기 위한 시도, 일종의 지배구조의 합리화 또는 효율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개(사실상 도쿄전력, 간사이 전력, 추부 전력 등 3개의 거대기업)의 민간 전력기업은 정부 정책에 강하게 저항했고 2008년 이후는 사실상 중단된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가 났다. 전국적 계통연계를 통한 전력공급이 시급했고,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공급이 필요했다.

일본 정부는 시스템 개혁을 이전과 달리 강력하게 재추진했다. 2016년 4월 가정용 전기 소매 부문까지 완전경쟁이 시작됐고, 2020년 4월까지 송배전망은 기존의 지역독점 대기업에서 법적으로 분리해야만 한다. 후쿠시마 사태의 주범인 도쿄전력은 이미 송전망을 분리해 도쿄전력 지주회사 내 발전과 송배전, 판매 등 3개 자회사로 재편했다.

이와 함께 가스산업 역시 2017년 4월 가정용 소매까지 완전 경쟁에 돌입해 전력회사와 가스회사 간 상호 고객을 뺏기 위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후쿠시마 처리 비용 전기요금 통해 국민이 부담

정부와 기업 간 윈윈 전략이 일본의 시스템 개혁

◆자유화는 일종의 후쿠시마 비용처리와 도쿄전력 회생 프로그램

민간기업들의 저항으로 중단됐던 일본의 자유화 조치가 재개된 이유는 무엇이며, 일본의 시스템 개혁이 과연 전기요금을 낮추고 민간독점 구조를 해체할 수 있을까.

현재 일본의 시스템 개혁은 사실상 후쿠시마 비용처리와 도쿄전력 회생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이후 파산직전까지 몰린 도쿄전력을 회생시킨 것이 일본 정부이며, 도쿄전력은 지주회사 체계로 재편돼 일본 정부의 지분이 다수이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도쿄전력을 회생시켜야만 후쿠시마 처리 비용을 마련할 수 있고, 도쿄전력은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스템 개혁 즉, 완전 자유 경쟁체제에서 더 큰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6년 9월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처리 비용에 10조 5000억엔이 더 필요하다고 발표해 총 21조 5000억엔으로 두 배 가량 늘어났다. 폐로 8조엔, 제염 4조엔, 중간저장설비 1조 6000억엔, 배상 7조 9000억엔 등이다.

바로 이 비용을 시스템 개혁을 통해 탁송비용 즉, 송전비용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전략이자, 민간전력기업들이 동조한 가장 큰 이유이다. 전력회사들을 발전, 송변전, 배전 세 개 회사로 법적분리 -소유권 분할이 아니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변전 회사를 분리해 전력회사, 사실상 원전회사들이 탁송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력회사들은 탁송비용을 통해 후쿠시마 처리 비용을 분담하고 경쟁을 통해 이득을 얻는 것, 일종의 정부와 기업 간 윈윈 전략이 일본의 시스템 개혁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 탁송비용은 전기요금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주택용이 대부분인 저압용 탁송요금이 가장 높은데, 그 평균은 kWh 당 9엔 즉, 90원에 달한다. 결국 후쿠시마 처리 비용은 전기요금을 통해 국민들이 감당하고, 도쿄전력을 위시한 전력회사들은 형식적으로 후쿠시마 해결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경쟁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것, 이것이 일본의 ‘변질된’ 시스템 개혁의 실체이다.

◆시스템 개혁 여파 신재생사업자 800개→372개 감소

현재 전기와 가스의 소매까지 완전 경쟁에 따라 도쿄전력은 통신·방송회사인 소프트뱅크, USEN 및 TOKAI 등 LP 회사 등과 연계를 통해 신규고객 유치 전쟁에 돌입했다. 간사이 전력은 통신·방송회사인 KDDI와의 연합 및 이와타니 산업 등을 신규 자회사로 만들어 유치 전쟁에 나섰다.

이렇듯 전기와 가스 소매경쟁은 민간대기업들이 통신 및 연관 사업과의 연계 즉 수직계열화를 강화시키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대다수 민영화된 나라의 경쟁 결과인 수직계열화 및 집적과 매우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일본 역시 기존 전력회사 중 지배적 대기업들은 연계산업을 흡수하고, 가스까지 계열화하는 거대기업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쟁은 도쿄와 오사카 지역 등 대도시에 집중돼 있으며, 회사를 바꾸는 고객 비중은 아직까지 크지 않다. 민간독점 전력기업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후쿠시마 이후 가중된 결과이며, 시스템 개혁에 따른 원전 재개 속도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 및 반감이 커서이다.

그런데 시스템 개혁의 타격은 신재생에너지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2012년부터 일본의 태양광 발전은 빠르게 확장됐고 2016년에는 독일의 태양광 누적용량조차 넘어서는 등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일본은 이들 사업자를 신전력사(PPS: Power Producer & Supply)라고 하는데, 후쿠시마 이전 50여개에 불과했던 신전력사는 2015년 10월 800여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2016년 12월 기준 신전력사는 372개로, 불과 일년 사이에 400개가 넘는 사업자가 사라졌다. 최근 신전력사 1위를 점유하는 사업자는 도쿄가스, 오사카가스, NTT 등 대기업들이 공동 설립한 Ennet이라는 회사이다. 기존의 민간독점 전력·가스회사들이 대규모 태양광에 투자를 시작해 시장을 잠식하고, 소규모 신재생사업자들에 대한 계통연결 차단 등 차별이 발생하고 있어 실질적인 신전력사, 소규모 태양광 에너지 사업자는 서서히 질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사업자들은 높은 탁송요금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이후 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체계적ㆍ공공적 에너지 전환 전략 필요

일본의 자유화 정책은 한국의 전력산업에 몇 가지 시사점을 제기한다.

첫째 민간전력기업이 장악하는 시장질서는 결코 회복 불가능하며,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초유의 불행을 초래했어도 그에 대한 부담은 오롯이 국민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공적 체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조차도 안정적이지 않다. 한국의 전력산업에 대한 공적 체제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과 체계적인 퇴각을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신재생에너지의 확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시장질서가 필요하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공적 질서 속에서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때만이 확장 가능하다.

일본은 후쿠시마 직후 2012년부터 FIT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태양광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경쟁의 확장 속에서 소규모 신재생사업자들은 거대 민간기업들에게 잠식당하는 양상으로 급격히 전락했다.

한국은 일본과 반대로 2012년부터 FIT 제도가 폐지됐다. 한국의 RPS 제도는 공기업 체제 하에서 공기업 및 대규모 발전사업자의 수익을 재생에너지의 투자로 전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전히 전력거래라는 시장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한국 역시 민간개벌 기업에 의해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이 잠식당하고 있어, 이제 태양과 바람조차 수익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전력 및 가스산업이 공적체계라는 매우 유리한 조건에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를 볼 때 보다 체계적이고 단계적이며 공공적인 에너지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베 정부와 유착해 후쿠시마 이후의 처리조차 국민들에게 전가하며, 에너지 산업의 M&A의 기회가 되는 것이 일본의 자유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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