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에너지신문] 2017년 국민과의 소통과 숙의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신고리 5,6호기 재개 여부를 두고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10월 14일 필자는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참여자들의 2박 3일 합숙현장에서 발표와 토론의 과정을 직접 참관했다. 발표 및 토론의 세팅과 진행은 매끄러운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발표자, 토론자, 조사참여자들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성실하게 절차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슈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온 전문가 발표자들이 원전중단과 원전재개의 양측으로 나뉘어 지나치게 대립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한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참가자들은 전문가 발표를 끝까지 귀기울여 경청했다. 또한 발표자들의 노력과 진정성을 높이 사며 세션이 끝나는 시점에 박수와 환호성으로 발표자들을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477명의 참가자들을 10명씩 나누어 47개의 조로 운영했던 토론 세션의 모습이었다. 필자는 점심 시간에 한 토론조의 참가자들과 우연히 합석하게 됐으며 그 분들의 양해로 한 세션의 토론 내용을 옆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1시간 동안의 토론 과정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합리적이고 수준 높은 것이었다. 각 토론조마다 전문성 있는 토론중재자(moderator)가 배치된 것도 도움이 큰 듯했다. 필자가 참관한 세션의 토론중재자는 토론의 목적을 안내하고 시간을 안배하며 각 주제의 포커스를 잡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10명의 토론참가자들은 각자가 가진 의견 뿐 아니라 개인의 관련 경험까지 편안하게 공유했으며 서로에게 질문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모든 참여자가 열린 자세로 활발히 토론했고 몇 번의 발언이 오간 후,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도 토론에 임하는 진지함이나 예의 등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맞장구치면서도 본인의 입장에 대한 표현에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숙의와 경청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 10명의 토론이, 심지어는 477명의 토론이 아무리 잘됐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부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또한 477명이 아무리 대표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공론조사는 정부정책을 결정하는 최종 결정도구도 아니고 사회적 합의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정책의 최종 결정자는 정부이며 그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정부가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결정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느 정도든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여론을 구성하는 국민 의견의 질(quality)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비전문가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비판 역시 공론조사를 반대하는 이유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당사자들이 포함된 국민의 의견을 배제하고 전문가들만 모여서 정책을 결정해도 되는 사안이란 없다. 또한 국민들의 비전문성보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와 편향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국민들도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가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이다. 공론조사는 국민의 의견의 질을 높이고, 참여하는 시민들의 효능감과 시민성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공론조사가 숙의적 정책결정과정과 민주적 거버넌스 모델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본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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