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근욱 옥스퍼드에너지연구원 선임연구원

[에너지신문]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인 탈석탄·탈원전에 대해,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인 대안부재로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백근욱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차탐하우스 연구원의 기고(2회)를 통해 문재인정부의 가스공급정책과 연계한 중-러 가스협력의 함의를 살펴보고, 우리 에너지산업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내용은 성균중국연구소의 성균차이나브리프(2017년 제5권 제3호, 통권44호)의 권두시평에도 게재된 바 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기고연재

①중-러 천연가스 협력, 진정한 승자는?

②한국 주도의 에너지정책 방향의 필요성

■ 한-중 에너지 협력의 새 지평

중-러 가스협력의 결과와 그 현실은 이제 시작한 문재인정부에게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지난 5월 ‘文대통령 러시아 가스관으로 北 문 연다’ 제하의 북방 에너지 정책 관련 보도를 접하고 나서 이전 정부들의 편향된 대러시아 북방에너지 정책과 대중국 에너지 정책 부재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때 추진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교착상태에 빠졌던 한국·러시아 천연가스협력 프로젝트를 재추진해서 북한을 국제사회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대형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여기에는 러시아 시베리아산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한 가스관을 통해 들여오는 방안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를 계기로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주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복안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나아가 미세먼지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

챠얀다 가스전 최대생산 시점과 사할린3 생산시점을 고려한다면, 문재인정부 임기 내에 10bcm 물량의 블라디보스톡으로의 공급은 비현실적이나, 그 실행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 선언의 전제하에(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핵심은 러시아가 북핵 포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며 대답은 부정적이다.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LNG 동맹시대 연다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은 중국의 협조 없인 결코 불가하다. 중국이 북한의 해상 및 육상국경을 봉쇄하고 파이프라인을 통한 원유공급을 결정하면 북한의 체제붕괴는 기정사실이 되며 시간문제다. 중국은 이 카드를 결코 쉽사리 동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십년간 중국이 목도한 한국의 북방에너지정책은 실망 그 자체였다. 이전 정부의 대러시아 북방 에너지정책은 러시아-북한-한국 가스파이프 라인 건설 추진으로 축약되지만, 러시아의 조정 역할 비중을 과도하게 부여하고 북한의 역할 또한 불필요하게 부각시킨 아주 무모한 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011년 말 김정일이 급사한 후 2달만인 2012 년 2월 중국은 CNPC 회장을 통해 한국석유공사(KNOC) 사장에게 산동반도와 경기도를 잇는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안을 제안했었지만, 한국정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편향된 러시아 정책에 대한 잘못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정부 또한 중국정부가 전심전력 매진하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이니셔티브의 중요성을 크게 받아들일 안목도 지혜도 없었기에 중국이 제시했던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제안을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임기를 끝냈다.

물론 2016년 4월 당시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CNPC 회장에게 긍정적인 화답을 보냈다고 했지만, 그 기사는 불과 10시간이 채 안돼 사라졌다. 참으로 슬픈 현실의 반영이었다.

문재인정부가 북핵 포기를 위해 미국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중국에 최소한의 신뢰를 가져다 줄 이니셔티브를 북방에너지정책을 활용해 제시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물 산출이 임기 내에 가능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제주에서 진행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제2차 연차총회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교량(橋梁) 국가’ 비전을 설파하면서 남한과 북한을 철길로 잇고 동양과 서양 사이 실크로드를 회복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만약 문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제안을 할 경우, 중국은 이 제안이 분명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반경을 넓히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중-러 가스협력에 토대를 둔 POS1 가스 수출이 동시베리아로부터 중국 발해만 지역으로 2020~2021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에 오랫동안 논의돼 온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이 완료되면, 한반도와 중국 발해만 지역을 잇는 원형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의 첫 번째 단계 작업이 완료되고 궁극적으로 러-중한 파이프라인이 바로 구축될 수 있다.

한-중 에너지, 특히 가스협력의 새 지평 개설은 한-중-러 파이프라인 건설에 병행해서 LNG 협력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우선 한국정부가 간과해 온 러시아 북극육상 LNG 개발 참여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

지금껏 한국의 관심사는 북극해를 통행하는 쇄빙 LNG선 수주에 있었고, 실제 지난달 세계 최초의 쇄빙 LNG선 ‘크리스토프 데 마제리(Christophe de Margerie)’호 명명식이 상트페테르 부르크에서 열렸다.

이 쇄빙선은 대우조선해양이 2104년 수주한 15척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선박으로 러시아 국영 소브콤플로트(Sovcomflot)사에 인도됐다. 한국 언론 또한 2016년 시작된 미국 LNG 수출 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올해 후반 시작될 야말 LNG 수출이 대아시아 시장에서 갖게 될 중요성은 여전히 관심 밖 사항이다.

문제는 야말 LNG 가격경쟁력이 미국 LNG보다 높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데 있다. 불행하게도 노바텍의 미켈슨 회장은 북극2 LNG 프로젝트 참여를 중국과 일본에는 제의했지만, 한국은 아직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나 기업들이 미국 셰일가스 개발 및 공급 외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 낭비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편견의 무서움과 경계는 한계가 없다. 지난 봄 한국가스공사, 일본 JERA(도쿄전력과 추부전력의 합작 에너지기업),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간 LNG 협력 합의가 발표됐다. 하지만 3사가 항시 동원할 수 있는 스팟물량이 없이 그 협력효과의 극대화는 요원한 현실이다.

북극2 LNG 1기 프로젝트에 CNPC가 참여한다는 전제 아래, 북극2 LNG를 토대로 한국과 중국 이 국부펀드 제공을 통해 대규모의 스팟물량 공급원을 확보하게 되면 양국은 경쟁력 있는 가스 도입 가격을 통해 가스 수요국으로서의 보호지렛대를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와 북극2 LNG 프로젝트를 통해 양국 간 LNG와 파이프라인 가스스왑을 통해 새로운 가스협력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중 해저파이프라인 건설은 한-중-러 파이프라인 협력의 문을 열고, 동시에 한-중이 북극육상 LNG 개발과 북극루트를 통한 항해 문제에 협조함으로써, 전통적 한-미-일 안보동맹에 더해 한-중-러 파이프라인 및 LNG 협력동맹의 시대를 열어 한국으로 하여금 통일된 한반도를 위한 진정한 의미의 중간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게 한다.

에너지협력 시너지, 북핵·한반도 통일 지렛대 활용해야

국부펀드 가치극대화 위해 가스담보대출 방식 시도 필요

■ 한국 주도의 독창적 에너지 정책 필요

이제 이 글을 ‘한반도의 장래를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반도의 장래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정상인가?

최근 독일 외무장관과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이 전례 없이 공개적으로 미국 상원의 대러시아 제재 확대 제안건을 비난한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양국은 공동 성명에서 ‘유럽의 에너지 공급은 유럽의 문제이지,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하면서 정치적 제약의 수단들은 경제적 이해와 연결돼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논란의 핵심은 1220km 길이에 100억달러가 투자되는 러시아와 독일 간의 해상 파이프라인 ‘Nord Stream 2’를 통해 공급되는 러시아 가스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해야 하는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독일에 대한 공급량을 두 배로 증대함으로써 미국의 대유럽 LNG 시장 잠식을 우려한 미국의회가 러시아 제재 확대를 의도적으로 감행한 데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사례이며, 몹시 우려되는 미국의 외교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미국에 맹목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관계를 전제로 한다.

북핵문제가 미국 이익 우선의 관점에서 다뤄져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한반도에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면 모든 부담을 한국이 감내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 주도해야 할 매우 중대한 사안들이다.

문재인정부가 탈석탄·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선언한 마당에 한반도의 장래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안들의 선택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국이 에너지정책, 북방자원외교정책, 금융정책의 창의적 융합을 시도한다면 획기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우선 가장 가격경쟁력이 있는 가스공급원을 확보해 전력발전 비용부담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적인 공급원이 부재하면, 새롭게 발굴해 내면 된다.

뒤늦게나마 중국이 먼저 제안한 황해 해저 파이프라인 건설안을 한-중 정상회담 안건으로 설정해 북방자원외교를 활성화하고, 한중뿐만 아니라 한-중-러 에너지협력의 길을 여는 한편, 그 시너지를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문제를 위해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끝으로 잠자고 있는 국부펀드의 가치극대화를 위해 중국이 처음 야말 LNG 개발에 적용했던 가스담보대출 방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인 수혜자는 가스 사용자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 한반도의 장래를 주도할 것인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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