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근욱 옥스퍼드에너지연구원 선임연구원

[에너지신문]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인 탈석탄·탈원전에 대해,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인 대안부재로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백근욱 영국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 & 차탐하우스 연구원의 기고(2회)를 통해 문재인정부의 가스공급정책과 연계한 중-러 가스협력의 함의를 살펴보고, 우리 에너지산업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내용은 성균중국연구소의 성균차이나브리프(2017년 제5권 제3호, 통권 44호)의 권두시평에도 게재된 바 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기고연재
①중-러 천연가스 협력, 진정한 승자는? 
②한국 주도의 에너지정책 방향의 필요성

지난해 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이 되는 이변적 상황이 전개되면서 필자는 올해 초 예정에도 없던 원고를 ‘중-러 에너지 협력과 미국의 트럼프 변수’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바 있다.

그 핵심은 통일된 한반도의 장기 이익을 위해선 차기정부의 에너지정책에 있어 기존 정책들의 재포장보다는 발상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는 점이었다. 동전의 양면을 보는, 균형을 맞춘 지혜, 독창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자원외교 정책의 추구로는 예전 정부들의 실패 반복이 명약관화하기에 목표설정에 앞서 한국의 잠재력과 한계를 정확히 짚어 봐야만 획기적인 대안 마련이 가능하다는 논지다.

같은 맥락으로 지난 5월말 성균관대학 성균중국연구소에서 의뢰한 ‘중-러 에너지 협력, 국제에너지 이슈 등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 및 신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성’이란 주제의 기고에서 밝힌 대로, 이제 막 시작된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은 맞다. 하지만 실행과정에 있어서 현실적인 대안 부재로 인해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기에 비판의 집중포화는 언제라도 가능하다. 달리 말해 총론은 괜찮은데 각론이 허약하다는 의미다.

총론은 맞지만 각론은 허약하다

선거기간 중이던 지난 4월 22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자가 발표한 ‘6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전의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LNG발전의 설비 가동률을 일정수준(60%) 이상 유지하며, 태양광·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전력량은 2030년까지 20%수준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이 최다 지지를 받은 공약 중 하나가 된 이유는 국민들의 미세먼지와 원전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2030년까지 석탄과 원자력 비중을 각각 25%, 18%로 낮추고 LNG와 신재생에너지를 37%, 20%로 올리는 야심찬 탈석탄·탈원전 정책기조를 현실화시키는 데는 많은 애로사항들이 산재해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언론들은 지난달 하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장관을 만나 러시아 PNG의 한국 공급을 위한 가스관 건설사업 재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로인해 러시아 PNG 가스공급이 문재인 정부의 탈석탄, 탈원전 정책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여 놓았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 극동지역 PNG 개발을 오랜 기간 연구한 전문가들에게는 현실성이 아주 낮고 정치적인 상징성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케이스로 인식된다.

신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맞지만 현실적 대안 없어

러 상류부문 개방 실패, 야말 LNG프로젝트에 기회

■ 중국 의도 읽은 노바텍이 수혜자

이제 중-러 에너지, 그 중에서도 가스협력에 초점을 맞춰 그 함의를 문재인정부의 가스, 특히 공급정책과 연계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러 석유협력은 중국이 제공한 2005~2006년 60억달러, 2009년 250억달러 규모의 석유담보대출(loan for oil)에 기초해 건설한 동시베리아 송유관(ESPO, East-Siberia Pacific Oil) 사업이 가시적 결과물이다.

러시아는 ESPO 건설로 유럽~아시아 간 스윙 원유공급자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으며, 중국은 절대적인 수혜자가 됐다. 이에 반해 중-러 가스협력은 거의 20년의 준비 협상을 거쳐 2014년 5월에서야 비로소 연간 38bcm 규모의 가스를 북경과 천진이 위치한 동부 시베리아로부터 중국의 발해만과 상해지역으로 공급하는 소위 ‘Power of Siberia, POS 1 파이프라인 건설’이 축이 되는 협약을 완료했다.

지난 5월 중순까지 러시아 사하공화국과 하바롭스크 크라이 지역을 연결하는 전장 2150km 가운데 740km의 건설을 완료했으며, 올해 말까지 1100km를 끝낼 예정이다. 지금 진행속도를 감안하면 오는 2019년 7월 또는 8월이면 POS 1 공사가 완료된다.

이는 러시아의 가스프롬이 약속한 공급시점인 2019년 5월~2021년 5월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사하공화국에 위치한 챠얀다 가스전의 연간 최고 생산량인 25bcm에 이르는데는 대략 5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2019년 5bcm으로 공급이 시작돼도 2024년이 돼서야 공급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 물량으로는 동북 3성(흑룡강, 길림, 요녕)과 발해만의 가스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연간 13bcm 규모의 물량이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초대형 고빅타 가스전(매장량 2.7 tcm, 연간 최대 생산량 35bcm)에서 800km 파이프라인을 통해 챠얀다 가스전으로 연결되거나, Third Party Access를 통해 러시아 국영석유사 로스네프트(NC Rosneft)나 민간석 유사 시브네프트(Sibneft)의 사하지역 생산량으로 채워져야만 2024~2025년경에 38bcm 규모의 물량 제공이 가능하다.

▲ 러시아의 대동북아 석유 가스 수출

동북 3성과 발해만 가스시장에 제공될 25bcm 물량의 가격은 미국에서 일본과 한국에 공급될 LNG와 비교해 확실히 가격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산동반도를 거쳐 상해까지 확장 공급되는 13bcm 규모 물량의 가격경쟁력은 상당히 취약하기 때문에 LNG 공급물량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즉 38bcm 규모의 모든 물량이 LNG와의 공급경쟁으로부터 보호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며, 이 부분이 중국의 고민거리이다.

여기에 사할린 1이 보유한 연간 8bcm 물량이 사할린 2 프로젝트로 제공되는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는 최근의 언론보도를 염두에 둔다면, 사할린 섬 북단에서 하바롭 스크를 경유해서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SKV 가스파이프라인에 공급될 수 있는 일정 물량은 사할린 블록 3으로부터 20~25bcm 규모의 생산이 예견되는 2020년대 초반이 돼서야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설령 10bcm 물량의 블라디보스톡 공급이 가능해도 현재 우선권은 블라디보스톡에서 길림성으로의 공급이지,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반도로의 공급은 그 대상이 아니다. 러시아 가스프롬의 원대한 바람은 로스네프트가 ESPO 건설로 가격협상의 지렛대를 보유한 유럽~아시아 간의 스윙 원유공급자가 된 것처럼, POS 1·POS 2(알타이)가 스파이프라인 건설을 통해 유럽-아시아 간 스윙 가스공급자가 되는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가스프롬의 상류(upstream)부문 개방에 대한 절대적인 반대다. 만약 서부 시베리아에 위치한 초대형 가스전의 지분 일부를 중국에 할애하는 정책을 택했었다면, 중국은 진즉에 서부 시베리아에서 중국 신장성으로 연결되는 직경 56인치, 연간 30bcm 물량의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을 서둘러 완성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알타이 가스 수출물량을 90bcm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중국은 상류부문이 봉쇄된 상태에서 유럽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러시아에게 스윙가스 공급자 자격을 서둘러 제공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결과적으로 상류부문의 개방실패는 가스프롬이 미국의 셰일혁명을 무시한 것에 버금가는 실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스프롬의 실책은 러시아의 민간회사인 노바텍 (Novatek)이 주도한 야말 LNG 프로젝트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야말의 성공요인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정부차원의 강력한 지원을 제공했고, 또한 중국이 노바텍에게 120억달러의 자금줄을 2016년 4월 하순 제공한 데 있다. 따라서 야말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2017년 하반기 중 공급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이 열린 것이다.

가스프롬이 그토록 반대하던 상류부문의 지분할애를 노바텍이 활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노바텍은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인 CNPC와 실크로드펀드에 각각 20%와 10%를 할애함으로써 중국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가스담보대출의 선례를 만들었다.

레오니드 미켈슨(Leonid Mikhelson) 노바텍 회장은 야말 LNG 프로젝트 성공에 힘입어 북극(Arctic) 2 LNG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북극 2 LNG 프로젝트의 첫번째 트레인에서 600만톤을 스팟물량으로 수출하겠다는 발상이다.

특히 미켈슨 회장이 염두에 둔 수출규모가 궁극적으로 7000만톤에 이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이는 앞으로 급격히 팽창할 미국 LNG 수출규모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성패의 관건은 과연 7000만톤의 개발에 소요될 최소 1100억달러란 막대한 자금 확보가 제때 가능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중-러 가스협력의 결과를 통해 중국이 러시아에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은 중국은 방대한 가스시장과 엄청난 자본동원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조건이 맞아야 그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수혜자는 중국의 의도를 정확히 읽은 노바텍이었고, 가스프롬은 여전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POS 1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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