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요 대응, 발전소 증설 대신 효율화
원전·화력 축소 공백, LNG가 현실적 대안

[에너지신문] 파리 기후변화 협약은 주요 선진국에게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여했던 1997년의 교토의정서와 달리 개도국을 포함, 195개에 달하는 국가가 참여한 보편적인 첫 기후합의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파리 협약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 이하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대책 마련 및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재정 지원, 기술 이전 등에 합의했다. 우리나라는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줄이겠다는 감축목표를 세웠다.

이 중 25.7%를 국내에서 감축하고 나머지 11.3%는 해외에서 탄소 크레딧을 구매해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3일 국회의 파리협정 비준은 획기적인 수준의 화력발전 감축과 친환경 에너지 개발 및 활성화를 요구하고 있다. 본지는 ‘더미래연구소’의 협조를 얻어 전력산업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전력믹스 구성 방안을 고민해봤다.

전력 과소비, 산업용이 주도…요금인상 우선
고리 1호기 폐쇄 후 5년이 ‘제로원전’ 출발점

■산업용이 주도하는 ‘전력소비 급증’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는 꾸준히, 그리고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09년 394TWh에서 2010년 434TWh로 전력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고 2014년 478TWh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력 소비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매우 비정상적인 수준의 증가 추세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3%로 영국 3%, 미국 2.4% 등 OECD 주요국가와 마찬가지로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음에도 OECD 국가들의 전력 소비량은 감소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전력 소비량의 총량이 증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평균전력 소비량과 피크전력 소비량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최대전력과 평균전력의 격차는 17GW였지만 2014년에 그 격차가 약 3GW 급증한 20GW까지 증가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내 전력 소비량이 많은 것은 산업 부문에서의 전력 과소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OECD 국가들이 소비하는 전력 중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32%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용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OECD 국가 약 31%, 우리나라 약 13%로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주목할 것은 전력 소비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 부문 중 일부 기업이 전력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 전력 다소비 상위 15개사의 전력 소비량은 총 7만 4871GWh로 전체 산업용 전력 소비량 26만 5634GWh의 28%에 해당한다.

이는 2015년 전체 전력 소비량 48만 3655GWh의 15.5%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는 2015년 가정용 전력소비량 6만 3794GWh보다 1만 1077GWh나 많은 양이다. 15개 기업이 국내 전체 가정의 전력 소비량보다도 많은 전력을 쓰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들 15개 기업은 전기요금도 가정에 비해 적게 부담하고 있다. 2015년 기준 15개 기업에 대한 판매단가는 95.8원에 불과하다. 가정용 전력 판매단가 123.7원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는 지적이다.

▲ 국가별 원자력발전 밀집도(2016.09.29. 기준, 단위:기, ㎢, MW) <출처:IAEA PRIS>

■수요 증가 해법, 발전소 증설밖에 없나

지금까지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정부의 대응 방안은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이었다.

2013년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총 12기(1만 500MW)의 석탄화력을 신규 허가했다. 지난 정부는 발전설비에 있어 경제규모에 걸맞은 안정적인 예비설비를 확보하고 경제·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한 전원구성을 위해 2027년까지 총 2만3570MW의 신규설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중 1만 500MW를 석탄으로, 4800MW를 LNG로, 4560MW를 신재생에너지로, 3710MW를 집단에너지로 채운다는 계획이었다.

2015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허가받지 못한 석탄설비 4기를 철회하는 대신 신규물량으로 원자력발전소 2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는 총 8조 500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난 정부에서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설비 증설과 함께 선택한 것은 신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과 석탄이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저탄소 에너지원에 주목했던 것은 사실이나 신재생보다는 원자력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을 이유로 안전성을 강화하는 수준에서 원자력발전 설비용량을 전체 발전설비용량 대비 29%까지 확대하려고 했다.

6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24년까지 36GW의 원전 건설 및 운영계획이 이미 확정된 바 있으며 발전설비용량 29%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7GW의 신규건설이 필요하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확정된 추가 발전설비용량 2869MW도 원자력발전을 통해 충당하고자 했다.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또한 주요한 정책 목표였으나 정부가 제시한 목표량은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2035년까지 목표한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1차 에너지 대비 11%로 전체 발전량의 13.4%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은 발전설비용량이 2008년 18GW에서 2015년 22GW로 증가했고, 석탄 화력의 경우 2008년 24GW에서 2015년 27GW로 증가했다.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의 설비용량을 모두 합치면 전체 발전설비용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2015년을 기준으로 전체 발전량 중 원자력과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1%와 39%로 총 70%에 이르렀다. 즉 발전설비용량 규모에 비해 실제 발전량에서 석탄과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산업용 및 가정용 전력 사용량 증가 추이(단위:GWh, %) <출처:2016에너지통계연보> 

■대한민국 전력정책의 전환 방향은?

다수의 에너지분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전력 정책의 결정 방향을 △공급에서 수요관리로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효율형 구조로 △석탄, 원자력 중심의 수급정책을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이른바 ‘3대 전환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수요관리 시장 창출, 전기요금 체계 개선 등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전환을 다수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뒤이어 발표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여전히 공급 중심의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는 수요 자체를 억제하기보다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신규 발전소를 증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증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전력설비 자체는 충분하므로 굳이 국민 수용성에 어려움을 겪는 석탄화력과 원전을 증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원전과 석탄화력의 이용률은 80% 이상인데 반해 LNG, 신재생 등 나머지 발전소의 이용률은 40% 이하로 현저히 낮다.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소만 고려하면 발전소가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타 에너지원의 발전설비까지 고려하면 국내 발전설비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발전설비가 남는데도 불구하고 LNG나 신재생이 외면당하는 것은 발전단가 때문이다. 하지만 석탄과 원자력의 경우 친환경 설비 증설 및 사용후핵연료 처리, 갈등 해소 등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크게 저렴하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전력 수요 전망에 대해서도 너무 과대 측정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정부는 2015~2029년 15년간 최대전력 수요가 연평균 2.2%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2010년 이후 전력 소비량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0년에는 전년 대비 10.1% 증가한 반면, 2013년 대비 2014년에는 증가율이 0.6%까지 감소했다.

향후에도 전력 소비량이 증가하기보다는 OECD 국가들처럼 감소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가 제시한 과장된 전력수요 전망치는 값싼 전기요금을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즉 정부의 값싼 전기요금 정책이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관리 중심의 전력정책 및 에너지효율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값싼 전기요금이 아닌 점진적인 전기요금 인상을 전제한다면 실제 전력 수요 전망치는 정부가 제시한 것보다도 훨씬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의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에서 ‘에너지 효율형’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 소비를 통해 생산되는 2차 에너지인 전기가 1차 에너지 가격보다도 저렴한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에너지 상대가격의 왜곡을 발생시켰고, 결국 에너지 소비구조의 왜곡까지 가져왔다. 무엇보다 낮은 전기요금이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고 전력 수요를 증가시켰음에도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석탄,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논리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왜곡 상태가 더 이상 장기화·고착화되지 않도록 하루 빨리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먼저 전기요금 인상을 산업용 전력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력의 과소비는 주로 산업 부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것이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를 효율형 산업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이 수요관리정책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석탄과 원자력 중심의 전력수급 정책에서 LNG와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신정부의 공약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고리 1호기가 폐쇄되는 2022년 이후 두 번째 원전이 폐쇄되기까지 약 5년의 여유 기간이 있다. 고리 1호기 폐쇄로 인해 부족해지는 발전량은 당장의 추가 증설 없이 기존의 잉여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만으로도 이를 충당할 수 있다. 바로 이 5년간이 정부가 장기적으로 제로원전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2050년 재생에너지 100%’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착실히 정책을 수행해왔다. 여기에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의 원전 제로 정책은 더욱 앞당겨져 2022년까지 원전 17기를 모두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원전 셧다운’은 어렵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값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발전단가가 저렴한 원자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만큼 사전 준비가 돼 있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선 원자력발전소의 추가 증설을 중단하고 가동 연한이 끝나는 대로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전의 중단·폐쇄로 인해 부족해지는 전력공급은 어떻게 충당해야 할까?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원자력발전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LNG 등 천연가스를 확대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석탄의 경우 신기후체제의 도래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더욱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원자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다만 신재생에너지나 LNG를 통한 발전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대될 때까지는 IGCC(석탄가스화기술) 등 신기술을 통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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