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코 이제환 팀장 - 오사카가스 지진대책 산업시찰을 다녀와서

▲ 매뉴얼에 따라 플렉시블 호스의 연결부 시공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오사카가스 연구원 직원의 모습.

일본 재난대응, 사회적 공감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기반

한신대지진 사용시설 피해 집중, 마이컴미터 보급 필요


 

▲ 예스코 이제환 서부안전팀장

가깝고도 먼 나라, 화산과 지진의 섬나라 일본

오사카가스는 도쿄가스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일본 가스회사다. 1995년 64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한신대지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동안 지진대응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왔기에 내심 많은 기대를 안고 이번 에너지신문이 주최한 지진대응 일본 산업시찰에 참여하게 됐다.

산업시찰 기간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로 지진과 같은 국가적 재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공감대와 성숙된 시민 의식이었다. 오사카, 고베 지역은 해안가 갯벌 매립지라는 지리적, 환경적 핸디캡 때문에 당시 지진에 따른 피해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오사카가스를 비롯해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가스회사들은, 내진설계를 넘어 면진시설의 설치를 확대하는 한편 철저하게 가스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역량을 쏟아 붇고 있었다.

재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분위기를 보면서 도시가스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부러움과 책임감을 느꼈던 3박 4일이었다.

 

▲ 오사카가스 도관기술센터 내에 있는 지진대비용 복구용품 창고.

차별화된 일본의 지진대응 시스템

산업시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오사카가스의 지진대응 시스템은 크게 3가지(예방대책, 긴급대책, 복구대책)로 구성돼 있었다.

첫째는 예방 대책이다. 오사카가스 본사 직원의 브리핑과 여러 시찰현장에서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점은, 한신대지진 당시 가스시설 피해 상황 가운데 고압과 중압 시설물의 피해는 전혀 없거나 경미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저압 시설 중 사용시설의 입상관의 나사 이음매부 등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오사카가스는 이런 실질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 가정집에는 감진차단장치가 내장된 마이컴미터의 설치를 의무화 했고, 현재는 모든 공급세대에 100% 마이컴미터 보급을 완료했다.

또한 오사카가스의 경우는 1978년부터 저압 공급관에 PE배관을 사용해 왔는데, 이 역시 한신대지진을 통해 PE배관의 내진 성능을 검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현재 오사카가스의 모든 저압배관은 PE배관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오사카가스 연구소에서 직접 시연을 통해 보여준 플렉시블 가스관의 시공모습이었다. 나사산 8개를 기준으로 자체 개발한 전용공구를 사용해 매뉴얼에 맞춰 시공자가 직접 시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시설이 요구하는 시공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철저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오사카가스는 PE배관의 일정한 시공품질 확보를 위해 접합부는 전자소켓 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또한 매설한지 오래된 전자소켓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랜덤으로 연결부를 굴착해 초음파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결함부위(버블)의 크기와 개수에 따라 지진이 발생할 경우 가스가 누출될 가능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사용자 PE배관의 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오사카가스의 자율 안전관리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번째는 긴급대책이다. 오사카가스 중앙보안사령실은 중요한 보안시설로 관리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진·쓰나미가 발생할 경우 40개소의 지역 거점과 258개의 지진감지센서를 통해 발생 위치와 규모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을 한정해 가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159개소의 촘촘한 블록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정압기(2994개)에는 감진차단장치를 설치해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가스를 차단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정압기실은 건축기준법에 따라 내진기준을 반영하고 있었다.

중앙통제실을 견학하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대규모 지진으로 본사 중앙보안사령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를 대비해 교토에 백업 상황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지진이나 쓰나미 등 자연재해로 인해 전기, 통신시설이 파괴될 경우까지 대비해 자체 송수신용 안테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백업 상황실과 고도화된 통신 시스템까지 추가로 운영하는 부분은 현재 국내 일반도시가스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세번째는 복구대책이다. 지진과 같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경우에는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오사카가스는 피해 지역 이외의 지역에서 피해지역을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 있었다.

그리고 도시가스사와 유관기관이 합동으로 재해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재해관리본부를 지역거점별로 설정해 본사 중앙보안사령실과 함께 신속한 피해상황 파악 및 복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산업시찰단 일행이 일정 말미에 방문했던 카와치 나가노가스㈜ 역시 비상시 주민들의 대피 장소인 동시에 펠릿으로 전기와 열을 생산할 수 있는 비상설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재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 지역거점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재해관리본부로써의 역할과 주민들의 대피처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복구에 필요한 자재는 마치 군대의 군수물자창고와 같이 별도의 창고에 충분한 양을 비축해 놓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그 규모에 압도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병원 등 주요시설은 공급중단에 대비해 이동식 가스공급장치를 갖추고 있었고, 대형 건물들 역시 자체적으로 LPG 가스공급 설비를 비상용으로 마련하고 있었다.

이 밖에 ‘센보쿠 LNG저장기지’의 경우도 내진설계가 반영된 것은 물론이고 쓰나미에 의한 피해 예방 시설이 추가로 설치돼 있었다. 기지 내 이동은 허가 받은 인원에 한해 직원과 함께 이동할 만큼 보안도 철저했다.

바닷가와 인접한 항만 등에는 쓰나미 발생시 주민들의 대피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마치 밀려오는 적을 막기 위해 마치 성을 쌓듯 해수의 유입을 막기 위한 방벽과 방재문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각종 재난사고에 왜 일본이 강할 수 밖에 없는지를 한눈에 봐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한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는 1995년 발생한 한신대지진의 기록전시실이나 다름없었다. 지역사회 아니, 일본 국민 전체가 그날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지진발생 시간인 ‘1995 5:46am’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인지 대구지하철공사장 폭발사고가 났던 우리나라의 1995년이 오버랩 돼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는 우리가 방문한 날에도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진을 경험해 보지 않은 미래 세대에 대해 지진의 참상을 교육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런 활동이 지진을 대비하는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내진기능과 자기학습기능이 내장되어 있는 일본의 마이컴미터. 일본에서는 한신대지진이후 각 사용자시설의 안전확보를 위해 마이컴미터의 보급을 확대해 현재는 모든 사용가의 설치가 완료된 상태다.

지진, 우리에게 적합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주에서 지난해 발생한 지진은 ‘우리나라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시사점을 던져 주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다시 다가올지 모르는 재난상황을 대비하도록,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함께 주어졌다. 앞선 잠깐 동안의 산업시찰 경험을 보더라도 일본의 지진대응시스템이 우리보다 훨씬 체계적이라는 점은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원칙과 계획 없이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해 과도하게 대응시스템을 준비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도시가스 도입 때부터 일본 기술기준을 적용해 왔다. 한신대지진을 통해 오사카가스가 경험하고 확인했던 것처럼 중압배관 용접접합, 저압배관 PE배관사용, MOV 밸브에 의한 블록화와 같은 시스템은 이미 국내에서도 잘 구축돼 있다.

특히 공급배관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주철관이나 아스팔트코팅관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일본보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지진대응시스템을 추가로 보완해야 한다면 두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첫번째는 대부분의 지진피해가 사용자시설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해 고객의 안전과 직결된 내진기능을 갖춘 마이컴미터의 설치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국내에서도 ‘계량기 선진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지진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시기적으로 매우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동안 원격검침과 안전차단기능만을 집중해 계량기의 선진화를 고려해 왔으나 지진이란 새로운 재난상황을 고려해 감진 차단기능까지 갖춘 마이컴미터의 보급 사례를 참조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두번째는 가스의 공급중단문제다. 사실 내진기준을 반영해 정압기실을 새로 건축하고, 정압기와 밸브에 감진차단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 뿐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더라도 정작 지진이 발생할 경우 가스공급을 중단할 수 있을 것인가는 다시 고려해 봐야 할 문제다.

얼마 전, 산업시설에 가스를 공급하던 배관에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가스공급을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장시간 가스가 누출된 사례가 있었다. 일본과 달리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산업시설과 다중이용시설(병원, 백화점 등)은 공급중단에 따른 준비가 전혀 안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지진대응 시설투자를 시행하기 전에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 우리 사회와 현실을 고려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가스와 고베지역을 방문했던 이번 산업시찰의 기회는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일본의 내진기준과 지진대응시스템을 직접 보고, 듣고,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막연한 상태에서 지진에 대비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는 도시가스사 입장에서 궁금증에 대한 일부의 답과 자신감도 갖게 됐다.

이 자리를 빌어 6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기업 방문객에게 본사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오사카가스와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번 산업시찰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준 에너지신문사의 최인수 국장, 황무선 부국장, 배움의 열정으로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냈음에도 통역과 안내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배철희 부장, 권기영 트레이드-업 팀장 등 여러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산업시찰 기간 동안 맛있게 먹었던 대부분의 일본 음식은 도자기 그릇에 담겨 있었다. 각양각색의 깜찍하고 예쁜 도자기 그릇은 음식 고유의 맛은 물론이고 정성과 풍미를 한층 더 느끼게 했다.

이 도자기들은 과거 임진왜란 때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의 도공들과 그들의 후손에 의해서 전수된 슬픈 역사를 안고 있지만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도자기 문화를 자기 것으로 발전시켜온 일본, 이번엔 일본의 지진대응시스템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 일본 산업시찰을 계기로 양국간의 기술교류가 더욱 발전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 오사카가스 도관기술센터 내에 전시된 각종 가스용품들을 산업시찰단 일행이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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