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고속로 기술 분석

파이로, 처분면적·독성감소기간 크게 줄여
시장확대·기술표준화로 경제성 확보 전망

[에너지신문] 원자력에너지 이용의 지속을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를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초우라늄원소와 같은 고독성·장반감기 원소를 포함하고 있어 독성이 자연 상태로 환원될 때까지 약 30만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또한 세슘(Cs), 스트론튬(Sr)과 같은 고방열 핵종을 포함하고 있어 넓은 면적의 최종처분장이 필요하다.

파이로-소듐냉각고속로 연계 재순환주기는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고독성·장반감기 핵종을 분리해 고속로에서 연소시키고 고방열 핵종을 분리 저장, 고준위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고 최종처분장의 면적과 독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세계 각국은 경수로, 가스로 등 다양한 원자로형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으며, 대부분의 원자력 이용국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자국에 맞는 후행핵주기와 고속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자력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환경친화적이며 핵비확산수용성을 가진 사용후핵연료 재순환 기술로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 연계 재순환주기’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본지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파이로-고속로 기술’에 대해 심층 분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파이로-고속로의 개발 배경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이하 파이로)는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우라늄(U)과 초우라늄(TRU) 원소 등 재순환 가능한 핵연료 물질을 고온(500∼650℃)의 용융염 매질(LiCl, LiCl-KCl) 내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회수하는 기술이다.

파이로 공정은 전처리, 전해환원, 전해정련, 전해제련의 공정으로 구성되며, 회수한 핵연료 물질은 소듐냉각고속로의 연료로 재순환한다.

기존의 습식재처리 방식은 순수 플루토늄만을 분리할 수 있으나 파이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포함 초우라늄(TRU) 원소들을 동시에 회수하는 기술로 핵확산 저항성(핵비확산수용성)이 우수하다.

또한 소듐냉각고속로와 연계, 독성이 오래 가는 초우라늄원소를 회수해 고속로에서 연소시키고, 열이 많이 나는 세슘과 스트론튬 방사성물질을 별도 처리 및 관리함으로써 환경친화성 극대화가 가능하다.

소듐냉각고속로(SFR, 이하 고속로)는 액체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고, 경수로에 비해 높은 에너지의 중성자(고속중성자)를 이용, 핵분열을 발생시켜 이때 나오는 열로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로다. 소듐은 열전도가 물의 약 120배 이상으로 높다.

SFR은 대기압과 고온상태에서 운전해 열효율이 높아(약 40%) 고성능 발전소설계가 가능하다. 특히 원자로 내의 풍부한 고속중성자를 이용,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고독성 장반감기 핵종을 핵분열시켜 단반감기 또는 안정된 핵종으로 변환하는데 용이하다.

기존 경수로는 열중성자를 주로 이용하므로 고독성 장반감기 핵종의 핵분열이 어려워 핵변환 측면에서 고속로에 비해 불리하다는 평가다.

▶새로운 처리기술의 기대효과는?
파이로-고속로 기술은 사용후핵연료 처분 면적을 크게 줄여준다. 심지층 처분에 있어 붕괴열(고열)은 지하 처분면적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미국 에너지부(DOE)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같이 세슘(Cs)과 스트론튬(Sr)을 99.9% 분리 저장하고, TRU를 99.9% 회수해 소멸하는 경우 처분효율을 최대 225배까지 높일 수 있다. 즉 처분면적을 최대 1/225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열을 내는 세슘, 스트론튬 등의 물질들을 별도로 회수 처리함으로써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의 면적 감소가 가능하다.

현재 파이로 공정에서 발생되는 세슘과 스트론튬에 적용 가능한 포집·분리기술과 유리고화기술이 개발돼 있으며 유리고화체는 저장용기에 담아 안전하게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

파이로-고속로 기술은 방사선 독성감소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우라늄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태우는 동안 방사성 독성도가 천연우라늄에 비해 크게 올라간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성 독성이 자연계의 우라늄원광의 독성까지 감소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30만년에 이르나, 파이로 처리를 통해 고독성 핵종을 고속로에 소멸시키는 경우 300년 이하로 줄어든다. 파이로-고속로 연계 핵주기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직접처분 대비 폐기물의 독성 감소기간이 1/1000로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처분대상 폐기물량의 감소 효과도 있다.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약 95%의 우라늄 및 TRU 혼합물을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용, 분리·회수하고 고속로에서 자원으로 전량 재순환할 경우 약 5%(무게기준)만 폐기물로 남게 된다. 고준위폐기물량이 직접처분 핵연료주기 대비 1/20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처분과 비용차이 크지 않아
파이로프로세싱은 습식재처리보다 단순한 공정이기 때문에 기술개발을 통해 충분히 상대적인 경제성 확보가 가능하다. 미국 알곤국립연구소는 상용 파이로 공정시설의 건설비가 습식재처리 시설의 약 1/5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소듐냉각고속로는 용량 증가 및 산업기반 확충을 전제로 기존 경수로의 건설비와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상용 고속로를 최초 도입할 경우 기존 경수로보다 건설 및 운영비가 다소 높을 수 있으나, 용량 증대, 시장 확대, 기술표준화 등을 통해 건설단가는 빠르게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러시아가 600MWe 규모의 BN-600 원자로를 건설할 때는 VVER-1000(러시아의 1000MWe규모 가압경수로) 건설단가 대비 1.4배가 소요됐으나 이후 BN-800(800MWe 규모)의 건설단가는 VVER-1000의 1.2배로 줄어든 바 있다.

현재까지 발간된 미국 MIT, DOE 등이 발간한 보고서 및 논문에 의하면 사용후핵연료를 재순환하지 않고 중간저장 후 심지층 처분하는 ‘직접처분 주기’와 파이로 처리해 고속로에서 재순환하는 ‘파이로-고속로 주기’의 경제성은 오차범위 이내로 차이가 없다.

다만 새로운 기술들은 현재 연구개발 단계이므로 엔지니어링 분석을 통한 시설비용 평가가 어렵고, 현 시점에서는 경제성 평가에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원자력연구원의 설명이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한-미 공동연구로 파이로-고속로 주기의 경제성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의 상황을 고려한 주민수용성, 핵 확산 저항성, 환경영향, 핵연료 공급, 에너지 안보 등 다양한 인자를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 비확산 수용성’ 우수
파이로-고속로 연계 재순환 핵연료주기의 핵비확산적 특성은 실제 핵물질의 분리가 이뤄지는 파이로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 된다.

파이로 공정을 통해 순수한 플루토늄(Pu)을 얻을 수 없고, 공정물질의 높은 방사능으로 인해 외부의 접근 및 취급이 어려우며, 핵물질 전용 시 탐지가 용이하기 때문에 파이로 기술은 핵비확산수용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배치 단위로 공정이 진행되며 주요공정이 핫셀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격납감시를 이용한 안전조치 목표 달성이 용이한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한-IAEA 회원국지원프로그램(MSSP)을 통해 연간처리량 10톤 규모의 가상 기준파이로시설(REPF)에 대한 안전조치 접근방안을 개발하고 IAEA로부터 동 시설에 대한 시설부록을 확보, 파이로 시설에 대한 효과적 안전조치가 가능함을 입증한 바 있다.

아울러 파이로의 핵비확산수용성 평가를 위해 2011년부터 한미 핵주기공동연구(JFCS)를 통해 안전조치 실증 데이터 확보 및 상용규모까지 파이로시설 설계기반 안전조치 수단을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IAEA가 한-미-IAEA 3자간 회원국지원프로그램을 통해 한미 공동연구에 참여, IAEA의 검토의견을 공동연구에 지속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공동연구의 결과가 파이로 안전조치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한미 양국은 한-IAEA 간 파이로 안전조치에 대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2015년 6월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에는 파이로 핵비확산수용성 평가 항목이 구체화돼 있으며 이와 관련해 파이로 시설의 안전조치 접근법 개발을 위한 한-IAEA 양자간 회원국지원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또한 KAERI PRIDE(PyRoprocess Integrated inactive Demonstration facility) 시설을 이용한 사찰관 교육을 2017년부터 매년 실시, 파이로시설에 대한 IAEA 검증계획 수립에 기여할 예정이다.

중대사고 발생활률 ‘제로’…안전성 보증
한·미 공동연구 수행으로 설계경험 확보

▶파이로프로세싱, 얼마나 안전한가?
파이로 운전은 핫셀이라는 두께 1m가 넘는 중콘크리트 구조물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방사성 물질을 핫셀 내에 격납할 수 있어 외부 방출의 가능성이 없다.

외부환경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신 원전과 같은 수준인 내진설계기준 0.3g(리히터 약 7.0규모)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으며, 항공기 충돌을 대비해 방사성 물질의 누출이 없도록 시설설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핵물질의 조작과 관련된 모든 잠재적 핵임계 위험성을 평가, 핵임계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기술을 확보하고 국내외 규제지침에 근거한 시설설계 및 통합안전성분석 기법의 적용으로 안전성개념을 설계 초기에 반영, 예비개념설계를 진행 중이다.

파이로 공정은 건식처리공정으로 고온 공정장치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전원을 차단하면 자연적으로 냉각, 굳게 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잠재적 열원으로 인한 노심 용융 등의 중대사고 발생가능성이 전혀 없다.

원자력연구원은 심층방어(defense-in-depth)의 개념을 적용, 방사성물질 외부방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공정 및 시설 안전설계기술 확보했다. 또 국제기준에 부합한 안전성 평가 절차를 도입, 공정 위해요소를 철저히 분석하고 사고 예방 및 영향 완화를 위한 조치들도 마련했다.

▶기술 연구 현황 및 성과는?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제255차 원자력위원회에서 파이로-고속로 기술개발 일정을 포함한 ‘미래원자력시스템 개발’ 계획안을 의결하고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2012년 공학규모 일관공정 시험시설(PRIDE) 건설에 성공했으며 2014년 모의시험을 통해 파이로공정 기술을 입증했다. 현재는 모의핵연료를 사용한 실증연구를 수행 중이다.

앞서 2011년에는 한미 핵주기공동연구에 착수, 이듬해 사용후핵연료에서 TRU물질을 분리, 회수하는 공정을 실증하기도 했다. 이는 실험실규모(회당 최대 30g)에서 파이로의 기술적 타당성을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사용후핵연료 사용 실험실 규모 파이로 전해환원공정 실증을 위한 차세대 관리종합공정 실증시설(ACPF) 개선 및 모의핵연료를 사용한 성능시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해환원, 연속식 전해정련, 염재생 기술 확보 등과 같은 실험실 규모의 핵심공정 기술 및 독창적인 파이로 공정기술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원자력연구원은 내년에 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전해환원 실증작업을 수행하고 2020년까지 종합파이로시설(KAPF) 개념설계를 마치고 2025년까지 KAPF 건설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소듐냉각고속로의 경우 1980년대 원자력연구원의 소규모 기초기술 연구를 시작으로 1997년부터 국가 원자력연구개발 중장기계획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R&D에 착수했다. 이후 미국 GE와의 기술협력으로 2001년 국내 최초로 소형 소듐냉각고속로인 KALIMER-150의 개념설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연구개발을 통해 순수 국내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개념의 원자로는 중형 고속로 KALIMER-600의 개념설계에 성공했다. KALIMER-600은 제4세대 소듐냉각고속로 국제공동연구 참조개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뒤늦게 고속로 개발을 시작했고, 건설경험도 없으나 고속로 설계능력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원자력연구원은 2020년까지 설계승인 획득을 위한 사업을 정부의 원자력기술개발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원자력연구원이 핵증기공급계통(NSSS) 설계 및 검증, 핵연료 설계 및 제조기술 개발을, 국내 원자력산업체가 BOP계통설계와 주요기기 설계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국제협력도 원활히 진행 중
한-미 양국은 파이로의 기술성, 경제성, 핵비확산수용성 검증 등을 위한 ‘한미 핵주기공동연구(JFCS)’를 수행 중이다.

연구내용 승인 등을 위해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구체적인 연구는 한국의 원자력연구원과 미국 국립연구소 등이 공동 수행한다. 운영위원회 하부에 기술조정위원회 및 3개의 워킹그룹으로 구성, 체계를 확립했다는 평가다.

연구는 3단계로 추진되고 있다. 먼저 2012년까지 진행된 1단계는 파이로 공정 및 안전조치(Safeguards) 기술에 대한 핵심사항 검증을 실시했다. 또 2단계(2013~2017)와 3단계(2018~2020)에서는 파이로의 일관공정 실증 등을 통해 기술성, 경제성, 핵비확산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검증한다.

연구에 소요되는 예산은 우리나라 미래부와 미국 에너지부가 공동 분담하고 있다. 파이로 공정연구는 양측이 50:50으로, 안전조치 및 핵주기대안 분야는 각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속로 기술개발도 양국 간 활발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원자력연구원과 공동설계를 맡고 있는 미국 ANL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속연료를 장전한 SFR에 대한 운전 및 설계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핵심 기술과 관련한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도 확보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ANL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실험자료 및 핵연료, 안전해석 등 전산코드의 실시권을 확보하는 한편 SFR 설계, 검증을 위한 과거 설계경험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제4세대 원자로국제포럼(GIF)에 주도적 참여를 통해 SFR 상용화를 위한 선진기술 및 신뢰성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울러 원자로 물리실험 시설 및 고속중성자 실험로를 갖춘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국내 개발중인 SFR 원형로의 핵연료봉 설계전산코드 검증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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