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일부 주민 회유 도장 받기 혈안" 증언
보상 규모도 제각각…명확한 법 제정 시급해

[에너지신문]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밀양뿐만 아니라 전국의 송전탑 건설지역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한전의 행태를 성토했다.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2017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를 주제로 발간된 보고서 내용을 짚어 보고, 실제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는 밀양 송전탑 건설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전과 주민들 간 협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 및 그 원인을 다뤘다.

 

▲ '밀양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를 다룬 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먼저 정보 공유 및 협의 과정에서 공공성이 결여된 것으로 분석됐다. 설득 또는 협의의 대상이 아닌 합의서에 도장을 받을 대상으로만 인식했다는 것이다. 송전탑 건설의 당위성과 피해 보상, 주민의 우려에 대한 해명 등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2005년 열린 주민설명회는 실질적인 정보 공유가 목적이 아닌, 형식적인 자리였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에서는 한전이 제대로 된 검토와 토론, 협의 절차를 무시하고 공사 강행을 위해 동의서를 들고다니며 주민들의 ‘도장받기’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마을에서 영향력이 있는 이장들을 회유, 이들이 동의서에 도장을 찍도록 종용했다는 주민들의 진술도 포함됐다.

여기에 시청 공무원들까지 가세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해졌다. “지금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나중에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며 동의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합의 보상금 지급의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개별 보상과 마을 단위 보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이에 대해 공개된 바도 없다는 것. 마을 간, 세대 간 받은 금액이 모두 다르고 마을에 따라서는 돈이 분할 지급되는 등 보상 형태가 제각각이었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결국 한전의 이같은 행태가 마을 공동체를 붕괴시켰다고 지적했다. 한전의 회유로 송전탑 건설을 찬성한 주민들과 끝까지 반대한 주민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고, 보상금 액수에 따른 2차 갈등 또한 심각했다는 것이다.

최재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위원장은 “대부분의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들은 노선 선정 및 이후 협의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다”며 “공사가 진행된 이후에야 송전선로 건설 사실과 그 심각성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또한 “공사를 맡은 한전 용업업체 직원들은 주민들에게 욕설, 폭력 등을 행사한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밀양 이외의 지역에서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발생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 밀양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송전탑 건설지역 주민들이 한전의 행태를 증언하고 있다.

김덕중 새만금 송전탑대책위 총무는 “송전선이 지나가는 농지는 1200평 기준으로 5000만원씩 값이 떨어졌다”며 “한전이 제시한 보상액은 겨우 1000~2000만원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김 총무는 또한 “한전이 마을 원로들에게 ‘몇 명의 도장을 받아오면 얼마를 주겠다’며 회유, 내용도 모르고 도장을 찍도록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홍성만 횡성 송전탑반대대책위 운영위원은 “송주법 보상은 선로에서 1km까지로 제한되다 보니 같은 마을이라도 보상을 받은 이와 받지 못한 이가 갈라졌다”며 “선을 그어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고 성토했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법의 제정을 통해 갈등조정 기구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정된 법에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주민들의 참여 보장 △갈등 해결과정 기간 중 사업 중단 △조정절차 위반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사업자가 임으로 진행하는 보상협상 대신 객관성을 갖춘 공적기구를 통한 보상 논의가 필요하며, 보상 규모도 보다 현실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송전탑 건설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전이 향후 지역주민들과의 협상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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