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원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에너지신문] 한때 전 세계 건설시장을 호령했던 우리 기업이 이제는 수주절벽이 현실화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수주절벽은 해외건설 시장의 여건이 급변하면서 생긴 결과다.

그동안 우리 기업의 주요 해외 수주 지역이었던 중동 산유국들이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재정 상황이 악화됐다. 그리고 인프라 수요가 많은 아시아 국가들도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국가 재정에 기반한 인프라 발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인프라 사업 발주 시 시행사 혹은 시공사가 금융 주선이나 지분투자 등을 통해 사업 리스크를 분담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국내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가 EPC 중심의 ‘단순도급형’ 사업이 주를 이루었고, 그마저도 국내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저가로 수주함으로써 수익성 저하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업체들도 자국 정부의 지원을 업고 저가 수주에 뛰어 들면서 경쟁이 더욱 심화됐다.

정부도 해외 인프라 수주 여건 변화를 인식하고, 우리 기업들이 이미 레드오션(Red Ocean)화된 ‘단순도급형’에서 고부가가치를 가진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확대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위해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자개발형 사업 참여 시 파이낸싱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글로벌인프라펀드(GIF)와 코리아해외인프라펀드(KOIF)가 대표적이다.

GIF와 KOIF는 각각 3500억원과 약 2조 3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건설특화 펀드로, 우리 기업들이 도로, 항만, 발전소 등 인프라 및 도시개발 등의 해외 투자개발 사업 시 프로젝트 회사(SPC)에 지분투자 혹은 대출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두 펀드 모두 정부 주도로 설립이 됐지만, 정책자금보다는 상업적 자금의 성격이 강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요구수익률 측면에서 두 펀드의 투자 약정 당사자들은 투자를 통한 최소한의 시장 수익률 담보를 원한다. 반면 민간기업들은 해외 투자 활성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는 요구수익률의 하향 조정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도 투자요건이 비교적 까다롭다. 두 펀드의 구체적인 투자 가이드라인이 공개된 바는 없으나 유사한 목적의 자금지원 조건을 참고하면, 해당 사업국가의 신용등급에 따라 추가 지급보증이 필요하기도 하고, 투자사업의 매출 하방보전 같은 조건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다자개발은행(MDB) 등의 참여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GIF의 경우 2008년에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실적이 4~5건에 불과하고, 2015년에 조성된 KOIF는 투자실적이 전무한 것은 아마도 두 펀드가 투자가이드라인이 까다롭고 보수적으로 운영된 결과로 풀이 된다.

그렇다면 투자개발형 해외사업을 활성화하고 건설특화 펀드의 활용도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기업들, 펀드 운용주체 등 관련 이해당사자들간의 공통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첫째, 앞서도 언급했듯이 정부를 포함한 펀드 운용주체와 기업들간 간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구수익률을 포함한 펀드의 투자조건이 기업들이 활용하기에는 여전히 까다로운 편이다. 따라서 현재의 저금리 상황을 감안한 요구수익률의 하향조정을 비롯해, 펀드 투자결정을 위한 사업 검토기간을 단축하는 등 좀 더 유연한 펀드 운용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 기업들도 해외 인프라 수주 확대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업개발을 위한 내부역량 강화가 최우선임을 인식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속적인 혁신과 노력을 해야 한다.

셋째, 초기에는 인프라 개발사업의 주요 타깃 지역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정보와 네트워크 측면에서 우위를 가진 지역 혹은 국가를 집중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주변지역으로 확산하는 전략을 가지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넷째, AIIB 등 MDB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국토부 및 펀드 운용사 등에 우리 기업들이 추진 중인 개발사업을 지속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MDB의 벽을 넘을 경우 국내 건설특화 펀드의 지원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토부에서 지원하는 사업 타당성 조사 지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스킨십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개발사업의 공신력을 높여 펀드의 수취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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