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기술개발본부장

[에너지신문] 21세기의 과학기술이 택해야 할 방향으로 ‘기술의 융복합’이 회자된다. 지속가능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이 융합·복합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융복합기술’이라 한다.

원자력연구원에도 이를 위한 융복합기술 개발을 책임지는 부서가 있으며 이 부서는 융복합을 가능케 하는 유망한 단위 기술 및 미래를 약속하는 중요한 기술을 다루고 있다. 해당 기술로는 로봇기술, 인공지능을 이용해 기기의 건강을 판단하는 기술, 레이저기술, 원자력시설의 해체복원기술, 양자빔의 발생 및 응용기술, 플라즈마를 이용한 핵융합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한 공학기술 등이 있다.

이번에는 이 중 로봇기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로 조만간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시대이지만 실생활에서 로봇을 체험하고 운용하며 로봇이 우리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로봇기술은 지난 30년간 인류의 문명에 큰 영향을 줄 10대 유망기술로 선정되는 등 많은 발전을 해 왔다. 반도체기술, 컴퓨터기술, 인공지능, 각종 첨단센서 기술 등에 힘입어 각종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위험하거나 반복적인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인간근로자 만큼이나 많은 로봇이 일사 분란하게 차량을 용접하고, 운반하고, 조립하는 광경은 로봇의 군무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뿐만 아니라 우주 탐험에서도 로봇은 그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시속 수만km의 속도로 지구궤도에서 움직이며 스페이스셔틀이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을 긴 로봇 팔을 이용, 회수하는 모습이나 화성에 착륙해 스스로 표면을 탐사하고 지구로 사진과 분석 자료를 송신하는 화성탐사로봇(영화 ‘마션’에서 볼 수 있다)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에 따른 쓰나미와 수소폭발 사고로 붕괴된 상황에서 로봇기술의 강국인 일본의 로봇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적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우주개발 강국 미국의 로봇도 기대만큼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세월호의 수색현장에 투입된 우리나라의 로봇 역시 국민들의 애타는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지난해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최한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오준호 KAIST 교수팀은 세계의 여러 팀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며 200만 달러의 상금을 수상한 바 있다. 이는 우리 로봇기술의 잠재력을 보여 준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하지만 경진대회에서의 1등 수상이 우리나라의 종합적인 기술수준이나 현 로봇산업의 기술력 역시 세계에서 최상위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알파고 대국 이후 인공지능의 육성을 위해 기술개발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로봇기술은 인공지능뿐 아니라 컴퓨터, 인식, 기구학, 구동장치, 재료와 통신 및 제어 등의 융복합기술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기술의 육성만으로 성장을 담보하기는 힘들다.

또한 최근 반려로봇이나 가사도우미 같은 개인 로봇이 상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는 해도, 시장성이 무궁무진하거나 관련기술의 개발주기가 빠른 기술은 아니다. 다른 융복합기술과 마찬가지로 기반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기술개발 및 이들을 유합시킬 수 있는 분야 간 소통의 확대가 로봇기술이란 나무를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기술은 영화 속의 다른 과학기술이 그렇듯이 조만간 현실화될 것이다. 로봇은 인간을 대신하는 믿음직한 조력자의 역할을 해 줄 것이며, 점점 고립화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의 좋은 친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수출과 상품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공공의 기술로 이해돼야만 우리나라 로봇기술도 세계와 융합해 인류의 복지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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