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지난해 어느 날, 같은 내용의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취재를 위해 출입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전화평가 조사였다. 조사를 진행하는 외주업체 관계자는 먼저 동의를 구한 후, 이를 승낙하자마자 다양한 질문들을 쉴 새 없이 던졌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생각한 후 대답하려고 했으나 결국 시간에 쫓겨 대충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자 역시 시간에 쫓겨 다급하게 처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각 공공기관들은 ‘청렴’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최고의 청렴도를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열고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가장 자주 열리는 청렴 관련 행사는 ‘청렴 서약식’이다. 새해 첫 날 시무식과 함께, 아니면 연중 수시로 개최되는 이러한 행사는 쉽게 말해 “우리가 청렴하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라는 취지에서 준비, 시행된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에너지기술평가원처럼 ‘흑역사’의 아픔이 있는 곳은 과도하다 싶을 만큼 청렴을 외치고 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전 및 발전공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았던 원전비리 사건 이후 정부는 각 공공기관들에게 강력한 청렴도 제고 및 사회적 책임 이행을 요구했다. 청렴도 평가 등을 통해 점수가 시원찮은 곳은 기관장 해임 건의 등 강력한 조치가 뒤따르고 있다. 이에 각 공공기관들은 자발적으로 내부 청렴 행동 강령의 요구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언제 어디서나 청렴을 외치는 보편적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전비리 이후 에너지업계에서 이렇다 할 대형 비리사건은 아직 없다. 현재까지는 청렴 서약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될 듯하다.

다만 청렴도를 자랑하기에 앞서 기관의 본업에 더욱 충실 한다면 굳이 과도한 청렴 강조가 필요치 않다. 보여주기에 앞서 내실을 다지는 것이야 말로 청렴의 기본 바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청렴도 강화를 위한 행사 준비에 인력과 예산을 조금 덜 쓰고, 대신 기술개발과 국제경쟁력 강화, 고용 창출 등에 더욱 신경써햐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는 청렴 제고보다 더 다급한 현안이 산더미처렴 쌓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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