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영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

[에너지신문] 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20년까지 글로벌 원전시장을 6410억달러(741조 7000억원) 규모로 추산했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2040년까지 현재의 원자력발전량을 두 배 이상 늘려야한다고 강조했다.

원전산업이 후쿠시마의 악몽에서 벗어나 확산의 모습을 보인 한 해였다.

온실가스 저감의 현실적 수단으로 원자력이 부각됐지만 국내에서의 모습은 혼용무도(昏庸無道), 즉 온통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초라한 것이었다.

계속운전, 해체산업육성, 스마트원전 PPE(사업전 엔지니어링) 협력협약 체결, 영덕 주민투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신월성 2호기 상업운전 돌입과 우리 기술로 개발된 APR1400의 최초 호기인 신고리3호기의 운영허가 획득 등의 문구들이 언론에 회자됐다.

그러나 이 중 우리 원자력계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고리1호기 계속운전 포기와 영덕 원전 유치 반대 주민투표였다.

두 사건 모두 반핵단체의 원자력에 대한 집요한 공격과 방향성을 잃은 정부와 원자력계의 허술한 대응이 문제였고, 지역 여론에 의해 결과가 좌우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월 27일, 3년 가까운 논란 끝에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이 원안위에 의해 승인됐지만 고리 1호기는 158개의 안전성 요건을 충족함에도 악화된 여론에 떠밀려 계속운전 신청을 포기, 2017년 6월 영구정지에 들어가게 됐다.

국제기준을 무시한 채 불시정지를 모두 ‘사고’라며 고리 1호기를 사고 많은 원전으로 왜곡했던 반핵단체의 공격은 집요했다.

계속운전이 세계적인 대세이며, 2014년 말까지 우리 원전에서 IAEA 기준 4등급 이상인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고, 고리 1호기는 1993년 이후 불시정지 연 0.5회 미만의 경이적인 기록을 보인 안전한 원전이라는 원자력계의 항변은 먹혀들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도 컸지만 2012년 2월 고리 1호기의 소외전원상실 은폐와 이어 드러난 원전비리가 고리본부에 집중됨으로써 회복불능으로 악화된 여론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계속운전의 과학적 안전성 판단 기준을 정부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향후 여론몰이로 유사 사태가 재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덕 주민투표는 그런 점에서 고리의 연장선상에 있고, 2014년 말 삼척시장이 주도해 압도적 원전 유치 반대를 이끌어냈을 때에도 정부가 단호한 대처를 하지 못함으로써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전 건설지역 지정고시에 의해 국가사무가 된 사안이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영덕이나 삼척 공히 적용돼 7차 전원계획에 삼척이 포함됐어야 했다. 그러나 이를 유보함으로써 반핵 측으로 하여금 영덕도 삼척처럼 원전 유치를 저지할 수 있다고 오판하게 한 것이며, 그로 인해 영덕 주민들을 찬반 갈등 속에 빠뜨린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11월 11, 12 양일간 치러진 영덕 주민투표가 관련 법 상 유효 요건인 3분의 1에 미달하는 32.53%의 투표율을 보여 더 이상 반핵측이 유효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투표 과정에서 반핵 측의 조직적 부정투표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들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투표에서도 원전비리에 따른 불신이 재확인되며 그간의 비리 재발방지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우리 원자력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비리와 뒷거래, ‘갑질’이 없는 청정한 원전 생태계 구축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 숙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반대 논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2016년 새해 원자력계가 풀어야 할 숙제는 그간 소프트웨어에만 한정된 비리 재발방지 노력을 뛰어넘어 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산업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사즉생(死則生)의 한마음으로 찾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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