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

▲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

[에너지신문] 지난 2012년 한국주유소협회가 전국 주유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조사에 응답한 5984개 주유소 중 97.7%에 해당하는 5845개 주유소가 계열 정유사와 전량구매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연한 전량구매계약으로 인해 정유사간 경쟁이 제한되고 주유소는 계열 정유사 제품이 타사 제품보다 비싸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 관행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이같은 정유사와 주유소간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한국주유소협회는 혼합판매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정부에서도 주유소단계의 혼합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12년 9월 ‘석유제품 복수상표 자율판매(혼합판매)’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계약에 따라 타사 석유제품을 구입, 혼합해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도 많은 주유소들은 계열 정유사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합판매를 하고 있는, 이른바 음성적 혼합판매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주유소가 음성적으로 혼합판매를 하는 원인은 정유사 재고물량에 대한 덤핑유 판매에서 찾을 수 있다.

연산품인 석유제품의 경우 내수 대비 생산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2013년 정유사의 내수 대비 생산비율은 121%로 나타났다.

정유사에서는 초과 생산된 과잉물량을 자사상표 주유소가 아닌 타사상표 주유소에 판매하기 위한 덤핑물량으로 리터당 20~50원 가량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유소들에게는 이같이 저렴한 가격의 석유제품은 큰 유혹으로 다가온다.

심각한 경영난으로 마진을 줄이면서 가격을 낮추고 있는 만큼, 계약 위반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사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유사에서도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주유소가 음성적으로 혼합판매를 하고 있어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유사의 재고물량이 계열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을 훨씬 하회해 현물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정유사에서 오히려 혼합판매를 조장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유사에서는 주유소단계의 혼합판매가 소비자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하지만, 정유사 공급물량의 35.2%가 제품교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주유소 단계의 혼합판매가 소비자의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분석한 2013년 정유사 석유제품 교환판매 현황에 따르면, SK의 제품교환비율은 38.3%, GS칼텍스는 49.7%, 현대오일뱅크는 30.9%, S-OIL은 15.8%에 달한다.

이미 정유사 공급물량의 35.2%가 제품교환을 통해 주유소 상표와 다른 정유사 제품이 공급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소비자가 인식하고 있는 상표와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유사간 품질 차이가 거의 없고, 정유사 단계에서 이미 제품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주유소 단계에서도 혼합판매를 활성화해 주유소가 정유사와의 협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본다.

이에, 주유소협회는 혼합판매 활성화를 위해 주유소와 정유사간 전량구매계약을 물량구매계약으로 전환하고, 원활한 계약 전환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됐으며, 이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물량구매계약 전환지원 사업’ 시행에 나섰다.

물량구매계약이란 정유사와 주유소간 특정 양을 약정한 후 약정물량만큼은 의무적으로 구매하고, 초과물량에 대해서는 주유소가 자율적으로 구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정유사와 주유소간 대표적인 불공정 거래 관행으로 지적되어 온 전량구매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주유소협회는 오는 11월부터 물량구매계약 전환을 희망하는 주유소들의 전환신청을 접수받을 계획이다. 정유사와 주유소간 불공정한 전량구매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보다 주유소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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