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섭 가천대학교 교수

▲ 김창섭 가천대 교수

[에너지신문] 최근 우리나라도 포스트2020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국가감축 목표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산업계와 시민단체의 요구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녹색성장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기반해 애당초 실현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한 탓에 우리나라는 적절한 목표설정과 합의에 의한 공동의 노력이 어렵게 돼버렸다. 이제나마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온갖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혼란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교훈이 있다. 정치적 수사와 실행전략이 통상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녹색성장이 발표되던 8·15선언문에서 얼마나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겠는가.

정치적 프레임이 강하게 지지받는 순간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면서 정치적 수사는 온갖 실무세계를 지배했다.

즉, 누군가의 허세를 위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급증한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 수사가 국가 전체에 강력한 통합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 휘말리면 그 사회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에너지계에서는 어떤한가. 에너지의 가장 핵심적 의제는 항상 에너지믹스였다. 에너지의 공급을 어떤 믹스로 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권세력의 정치적 수사에 따라 그때 그때 에너지믹스에 대한 선택이 이뤄졌다.

그에 따라 일부 교수들과 전문가집단이 나타나서 그것을 합리화시켜준다. 그 선택에 따라 이해가 갈리는 산업계의 집단들이 시끄럽게 혹은 은밀히 작동한다. 물론 상당한 수준으로 에너지원별 선호도를 갖는 집단에 의해 일정한 전선이 형성된다.

특히 원전을 둘러싼 논쟁이 그러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리소문 없이 물가나 세수논리에 의해 에너지믹스를 다른 곳에서 결정한다. 물론 에너지당국이나 에너지계는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선진국 지도자들이 100년 후에는 화석연료가 사라져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이역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향성을 견지하기 위해 유럽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를 강화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방향성을 설정했다고 해 그들이 석유와 석탄을 퇴출시키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중동의 석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유설비의 증설로 석유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에너지믹스를 둘러싼 정치적 수사와 기술과 자본의 움직임을 구분해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나라는 포스트2020이 시작된다. 이것의 본질은 정치적 수사다. 포스트교토체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후협약의 사전예방의 원칙은 중요하다. 그리고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 각국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에 비해 지나치게 앞장선다.

대한민국이 왜 실천가능성이 의심되는 기후관련 국가감축목표에 앞장서야 하고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그럴 여유가 있고 국제사회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ODA예산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기후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저탄소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인류의 행보다. 그러나 지난 정부처럼 정치적 수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는 목표를 밀어붙이는 우를 다시는 범하면 안 된다. 현 상황에서 달성가능한 최대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집권그룹들은 지극히 유한하고 기후대응에 소요되는 시간은 아주 길다. 일관성 있고, 책임성 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 우리는 그간 세제와 물가정책으로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탈석유화를 성취했다.

이미 충분하다. 감축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실천가능성도 없는 목표를 국제사회에서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점을 감안해 현실적인 노력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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