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해외자원개발, 정치적 소모전에 에너지 안보 ‘뒷전’
공기업, 대형화는 필수…공개보고서 등 신뢰성 향상돼야

[에너지신문] 지난 정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해외자원개발 사업들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해외자원개발 자체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고, 이에 대한 국정조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진이 남아 있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자원외교가 이명박 정권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도 자원외교는 상당히 활발히 추진됐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면서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는 등 어느 정권보다 적극적으로 에너지와 해외자원개발에 관심을 뒀다.

석유·가스는 국가경제의 식량이며,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는 중요한 재화라는 점,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는 공급국의 다양화뿐만 아니라 해상 수송망의 안정성도 중요하다는 것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정권이 적극적으로 자원외교에 나선 것은 다른 어떤 원인들보다 2008년 급격한 유가 폭등 때문이었다. 당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이르렀고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을 넘었다.

2008년 당시로 되돌아가 본다면 높은 휘발유 가격으로 인한 국민들의 당혹감은 대단했고, 세금을 낮춰서라도 휘발유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요구들이 빗발쳤다. 불과 7년 전의 일이다.

석유와 가스의 97%를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국내 광물자원도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해외자원개발을 통한 자원의 안정적 공급은 국가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국제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국가가 내놓을 수 있는 해결방안은 적극적 해외자원개발이었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화석연료는 물론 철광석 등 경성자원까지 거의 모두 해외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외자원개발에서 혼란과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국정조사까지 갔어야 되는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몇 가지 원인들을 살펴본다.

첫째, 자원개발 산업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 없이 유가 또는 광물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조급하게 추진되면서 문제를 야기했다.

자원개발 산업은 기본적으로 제조업들과 성격이 다르다. 자원보유국, 수송 파이프라인 또는 선박의 통과 경로국, 기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투자의 성공여부가 결정되고, 경제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들이 혼합돼 국제유가가 형성되는 고도의 정치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업이다.

또한,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적 시각에서 사업을 바라봐야 한다. 스마트폰의 평균 교체주기가 1년인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장기적 사업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1970년대의 고유가 시기와 2000년대 후반 국제유가의 급등에 따라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졌지만, 결국 국제유가의 하락과 더불어 급격히 시들고 말았다.

장기성은 투자계획뿐만 아니라 투자의 성공여부 판단 또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 보니 자원가격이 하락할 때 투자해서 가격이 오를 때 팔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가하락에 안도하고 단기적 시각에서 자원개발 성과를 판단해온 우리는 비쌀 때 투자해서 취득한 재산을 싸게 팔고 있다.

이런 엇박자 흐름 속에서 어떤 정치적 꼼수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하는 그야말로 정치적 소모전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자원개발의 주체의 혼란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원개발은 누가해야 하는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안보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은 국가의 책임이다. 물론 민간이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 책임을 민간이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이 높은 자원개발 사업에 과감히 투자하려는 기업들을 찾기 어려운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이 분야의 사업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원개발 산업의 위험이 너무 크다보니 그 위험을 감수하기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대부분 국영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됐다.

영국의 BP, 프랑스의 Total, 이탈리아의 Eni, 네덜란드의 Shell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메이저 석유회사란 상류의 생산, 중류의 수송 및 하류의 정제와 판매의 전주기 산업(가치사슬)에 참여하는 다국적, 대규모 기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라는 이원적 에너지 공기업과 광물공사라는 광물분야 공기업을 두고 있다. 그런데 광물공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하나의 회사가 돼야 하는 것이 맞다. 가스공사가 세계 1위의 LNG 수입회사라고 하지만 메이저들에 비하면 상류와 하류의 역할은 약한 도매회사 정도에 불과하다.

석유공사는 그나마도 중·하류의 산업에는 진출도 못한 상태이다. 이 두 회사를 하나로 합병하면서, 메이저 회사가 될 수 있는 인력과 노하우를 갖추도록 생태계를 조성해줘야 한다.

공기업의 지배구조도 개선돼야 한다. 사장이나 감사, 사외이사에 자원개발을 잘 모르거나 정치에 몸담던 사람, 또는 정치권과 가까운 교수들이 임명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 해외자원개발을 올바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가와 회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자원개발 사업의 생리상, 대표적인 운영회사 없이는 대형화나 서비스기업의 육성이 사실상 어렵다. 광구의 전체적인 통제와 지휘를 할 수 있는 운영권이 있어야 국내 서비스기업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운영능력이 있는 국가대표 에너지 기업이 없는 해외자원개발은 공허한 주장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원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치인들과 대통령의 측근들이 전면에 나섰던 것이다.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과 자원개발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의 치밀한 전략 아래 추진됐다면 과오는 최소화됐을 것이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사업이 추진됐기 때문에 사전에 신중하게 검토돼야 했던 자원보유국의 정치적 상황, 법, 사회, 문화적 쟁점들은 부수적이거나 참고적인 검토 사항들로 치부됐다. 그러니 정치나 법적 상황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해외자원개발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자원개발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기적 시각에서 해외자원개발정책이 수립되고, 자원개발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며 자원개발의 성공여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수립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자원개발 투자에 대한 신뢰성의 확보를 위해 공개보고서(Public Report)제도를 도입하고 공개보고서의 작성에 대한 능력과 책임이 있는 자원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길이고, 국내 민간과 금융의 투자를 유치하는 길이다.

세금만으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장기적으로 국내 금융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 전제가 자원개발의 성공가능성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판단에 대한 신뢰성에 있기 때문이다.

해외자원개발을 비난하기 전에 자원개발 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정치적 비난에만 몰두하고 그나마 뿌리를 내리려는 해외자원개발 자체를 고사시킬 것이 아니라, 자원평가 전문가를 양성하고 낙하산 등을 방지해 자원개발 공기업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등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어느새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에서 70달러 근처로 오르고 있다. 또다시 때를 놓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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