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연, 세계무대 향해 돛을 펴다

금형기술 기반 출발, PE분야 강소기업 성장
토종제품 성공신화, 세계무대 향해 출발

[에너지신문]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관객동원 800만을 넘기며 10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시장’의 돌풍은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 때문이지만 6.25를 거쳐 온 한국 현대사를 생생히 재현했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시장에 감동하는 이유는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가장’, ‘우리네 아버지’의 감동 스토리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에너지 업계도 국제시장의 황정민씨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모델이 있다. 바로 전자식 PE(폴리에틸렌) 전자식 소켓형 이음관(E/F)과 PE 볼밸브 생산업체인 (주)대연(舊 대연정공)의 김영식 사장이 주인공이다.

1984년 6월 1일 금형회사로 출발한 대연은 지난해 6월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 집의 살림을 책임져야 했던 스물여덟의 김 사장은 선반 한 대를 밑천으로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30년 후 김 사장은 대연을 세계 30여개국에 연간 1000만불의 제품을 수출하는 견실한 중소기업으로 일궈냈다.

그러나 사실 대연의 성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수입품이 독점하던 국내시장에서 토종제품으로 성공신화를 이뤄낸 30대 청년 (주)대연과 김영식 사장은 또다시 세계란 무대를 향해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 김영식 (주)대연 사장.

(주)대연의 새로운 출발은 이제부터

“내년 1월이면 글로벌 무대를 향한 모든 세팅이 끝날 것입니다.” 김영식 사장은 올해 연말이면 대연이 세종첨단일반산업단지 1만평 부지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될 것이라며 이제부터가 바로 대연의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전자식 PE E/F 및 PE 볼밸브 전문 생산업체인 대연은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12월 5일 열린 제51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세계를 향한 본격적인 닿을 올렸다. 2000년대 초 일본 수출과 중국 진출을 계기로 시작된 대연의 해외수출은 2002년 무역의 날 300만불 수출탑 수상을 시작으로 2009년 500만불, 지난해에는 1000만불을 수상하는 등 어려운 세계경제 속에서도 성장 가도를 이어 왔다.

김영식 대연 사장(58)은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PE 전자식이음관과 PE볼배브를 국산화하며 초기 해외제품 일색이었던 국내 PE용품시장의 국산화를 주도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제품을 일본과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27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전 직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없이는 지금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 사장은 대연의 성장 신화를 온전히 직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가족을 위한 남보다 이른 출발

현재의 대연이 있기까지 김영식 사장의 성공가도가 항상 승승장구였던 것은 아니다. ‘사업을 해오며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언제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영식 사장은 왕십리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와 화재로 다시 시작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마장동 시절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버님을 여읜 김영식 사장은 일찍부터 홀어머니와 누나와 동생까지 장손으로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야할 역할을 떠맡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남들보다 먼저 돈을 벌어야 했고, 가족들을 책임져야하는 장손의 역할을 일찍부터 감당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접고 야간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졸업식 때 자신이 사용했던 공구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도 못했다. 바로 그 공구들이 그의 유일한 사업 밑천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물여덟이 되던 1984년 6월 그는 왕십리에 대신공업이란 자신의 사업체를 차렸다. 선반 한 대와 맨주먹이 바로 대연의 첫 출발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주 어려서부터 하루빨리 내 사업을 갖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28살이 되던 해 그 꿈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남과 달라야 성공, 위기는 곧 기회

김영식 사장이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는 올림픽을 앞둔 시기였지만 사업하기에 그리 녹녹한 시절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통해 배관의 금형을 만드는 일을 했지만, 말처럼 사업의 길도 쉽지만은 않았다. 회사 설립 3년차 마장동으로 회사를 옮기고, 성실히 키워오던 회사가 옆 가계에서 시작된 불로 하루아침 잿더미로 변하는 일도 겪어야 했다.

“그 시절엔 담배 값도 아까웠죠. 차라리 그 돈으로 공구를 샀습니다. 그리고 틈 만나면 제품을 개발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 다하고, 남들이 하는 일만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김 사장은 E/F 개발에 과감하게 뛰어든 것은 이처럼 타고난 장인정신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금형 전문가로 일해 온 그는 수입 E/F를 분석한 뒤 자신감을 갖고 도시가스보급이 확대되던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PE E/F를 개발에 착수했고, 곧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제품개발에 성공했어도 초기엔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시 보수적인 도시가스사들을 대상으로 생소한 회사의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사업초기 대림파이프를 비롯해 일부 도시가스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를 통해 점차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결정적인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연의 제품이 본격적으로 국내 보급될 수 있었던 계기는 우습지만 IMF였다. 국가적으로는 위기였지만 오히려 국가의 외환위기가 대연에서 개발한 국내 E/F의 보급을 확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PE관련 제품들은 하루아침 뚝딱하고 금방 나오는 제품이 아닙니다. 제품의 종류만도 수십에서 수백여종에 이르고, 제품 하나만 가지고 물건을 팔기도 힘드니 세트를 갖춰야 합니다.” 그는 결국 대연의 성장원동력과 경쟁력은 바로 금형기술이 기반이었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 김영식 사장과 해외수출파트너인 Packfic Gas and Electric Company David L. Wasson가 함께 미국으로의 제품수출을 위한 협의를 진행한 후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대연, 세계무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

“기업을 창업해 30년을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는 현재의 대연이 있기까지는 PE 파이프사를 비롯해 전국 도시가스사 등 가스업계의 적극적인 도움이 컸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현재 대연의 제품은 국내 도시가스사에 납품하면서 품질향상을 거듭할 수 있었다. 또 이를 기반으로 현재는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동남아 등 세계 27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PE제품분야에서 대연은 세계 일류 상품의 반열에 올랐다. 대연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E/F 약 150종을 비롯해 밸브 약 30종, 시공 장비 10여종 등의 결과물은 그동안 김영식 사장의 꾸준한 R&D와 투자의 결과인 셈이다.

가스용에 이어 수도관용 이음관 및 밸브시장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김영식 사장은 제2의 도약을 위해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세종첨단산업단지에 3만3057㎡(1만평)의 부지를 확보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사람이 곧 기업의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김영식 사장은 최근 외국에서 공부한 글로벌 인재 5명을 새롭게 충원해 먼저 자사제품의 이해부터 차근차근 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바로 새로운 시작, 세계무대를 겨냥한 사전포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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