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균 한국가스공사 선임연구원

유가연동제 이외 구조의 LNG 활용이 관건

[에너지신문] 미국 셰일가스 혁명이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세계 가스시장, 더 나아가 에너지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에 찬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한 후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그러나 현존하는 셰일가스 관련 연구들을 보면 △북미 현지의 셰일가스 개발동향 및 시장변화 △플랜트, 조선산업 등 연관산업에 미치는 영향 △수십년 단위의 세계 에너지 믹스 변화 등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스공급을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LNG 도입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될 것이며, 대부분의 수입량이 장기계약에 묶여 있는 가스산업에서 이는 곧 장기계약의 가격구조 변화를 의미한다. 즉 ‘셰일가스에 의한 세계 가스시장 변화의 영향’ 중에서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셰일가스에 의해 동북아 LNG 장기계약 가격결정 구조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최근 수년 동안 유가연동 위주의 계약구조에서 가스수급을 반영한 시장(허브)가격 연동방식 장기계약의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 유럽시장의 변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고, 셰일가스에 의한 가스시장 변화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우리나라 가스산업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유럽시장 유입 단기 LNG, 계약구조 변화 원인

동북아시아 시장의 LNG장기계약이 원유가격 연동제를 기본으로 하듯이 유럽의 PNG 및 LNG장기계약은 전통적으로 석유제품(중유, 경유)가격 연동방식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이는 1962년 생산 개시한 네덜란드의 초대형 가스전 Groningen에서 생산된 가스를 독일에 판매하기 위한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 시초이다.

당시 천연가스는 보급 초창기 단계였기에 기준으로 삼을 만한 가스가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 계약은 경유, 중유가격에서 일정비율을 할인하여 매월 가스가격을 결정하는 석유제품가격 연동제를 채택했다.

이는 당시 유럽 가정·산업용 시장에서 각각 경유와 중유가 주요 경쟁연료로 부상하고 있었기에 이들 가격에서 일정비율을 할인함으로써 천연가스 가격이 항상 보다 낮아지도록 함으로써 천연가스 보급 확대를 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네덜란드는 프랑스, 벨기에와도 비슷한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 만들어진 구조가 오늘날도 유럽 천연가스 장기계약의 기본을 이룬다. 유럽위원회에서 실시한 장기계약 가격변수 조사결과 <표 1>에서와 같이, 약 50년 전에 만들어진 네덜란드식 장기계약 구조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석유제품 연동방식의 장기계약이 압도적이었던 유럽시장에서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다. 유럽 경영대 에너지경영연구소에 기고된 바에 따르면 2011~2012년 유럽시장 공급가스의 가격결정변수 구성비는 <표 2>와 같이 약 절반 정도가 허브가격에 따라 공급가격이 결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전 수십년간 석유제품 연동방식의 계약구조가 지속되어 왔음을 감안하면 짧은 기간 동안에 대단히 큰 변화를 불러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왜 일어났을까? 천연가스 수출입이 기본적으로 장기계약에 매여 있다는 특성상 이러한 변화가 있으려면 △공급자가 스스로 유가연동을 포기하거나 △유가와 무관하게 가격이 결정되는 물량이 신규 유입됨으로써 유가연동 장기계약 물량의 비중을 낮추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럽시장에서 유가연동제가 50년 가까이 지속된 점을 감안하면 공급자들이 스스로 이를 포기했다는 해석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결국 유가연동방식 이외의 천연가스 물량이 시장에 유입됨으로써 기존 유가연동 물량과의 경쟁이 유발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시장의 수급통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정황을 포착할 수 있다. 우선 유럽시장 LNG 수입량을 보면 <그림 1>과 같이 카타르산을 중심으로 2009~2011년 동안 크게 증가하여, 2011년에는 약 6475만톤을 수입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림 2>와 같이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 가스생산이 크게 증가하면서 미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던 LNG물량이 수요처를 잃고 유럽으로 유입된 데 기인한다.

동북아 LNG 과잉공급 가능성 희박
배관망 중심 유럽, 잉여물량 전환 어려워

▲ <그림1> 유럽 LNG 수입량
특징적인 점은 이 때 유럽으로 유입된 LNG는 장기계약이 아닌 단기물량이라는 점인데, 2010~2011년 유럽의 LNG수입량은 장기계약 물량을 600~700만톤 정도 상회하는 6440~6470만톤을 기록하였으며, 이러한 단기물량은 대부분 카타르에서 흘러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즉 최근 수년 사이 장기계약이 미 체결된 단기 LNG가 카타르산을 중심으로 대거 유럽시장으로 유입된 것이 계약구조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물량은 장기계약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경유, 중유 중심의 장기계약 가격을 구매자로부터 얻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앞에서 언급한 가격구조 변화의 2가지 조건 중 하나인 유가연동 이외의 천연가스 대량 유입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2012년 들어 원전 가동정지로 인해 LNG물량이 일본으로 대거 선회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와 같이 미국발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해 일시적이나마 과잉공급 상황이 벌어지면서 유럽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공급자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유럽시장 2위의 천연가스 공급사인 노르웨이의 Statoil이 가장 적극적으로 장기계약에 허브가격을 도입하고 있는데, 동사는 이미 필자가 확인한 것만 총 8건 최소 59.5Bcm/y의 물량에 대해 시장가격 연동을 도입하였다. 이미 동사의 독일 수출 천연가스는 전량 유가연동을 탈피하였고 영국/벨기에/네덜란드 수출계약도 대부분 시장가격연동으로 전환한 상태이다. 또한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동사 천연가스 판매 장기계약 중 75%가 2015년까지 시장가격연동이 될 예정이다.

한편 유럽시장 최대 공급자인 러시아의 Gazprom은 유가연동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으나, 공급자 경쟁을 의식한 듯 필자가 확인한 것만 총 8건의 장기계약에서 10~33%의 가격할인을 제시하는 등 조금씩이나마 변화의 흐름을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리하자면 셰일가스에 의해 수요처를 잃은 단기 LNG가 대거 유입되면서 수급균형 붕괴가 발생하였고, 이에 따른 공급자 경쟁에 의해 촉발된 것이 최근 유럽시장의 장기계약 구조변화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 <그림2> 미국 LNG 수입량 및 장기계약
현재 동북아시아 시장에 역내 수급균형을 반영하는 시장가격지표는 존재하지 않으나 일본, 싱가포르 등이 동북아 가스허브 설립을 목표로 나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LNG시장의 대형 구매자인 한일 양국은 소량이나마 헨리허브 연동방식의 장기계약 물량을 확보해 놓고 있으니 유가연동의 대안으로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표는 갖춘 셈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선 원전 정지로 일본의 LNG수요가 급증한 동북아시아 시장에서 유럽과 같이 일시적이나마 과잉공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또한 유럽시장은 기본적으로 주요 수출입국들이 배관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국 입장에서는 시장에 과잉공급이 발생했을 경우 잉여물량을 다른 시장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역적인 특징이 존재한다. 선박에 의한 수송이 근간이 되는 LNG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시장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외부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여건을 모두 감안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는 셰일가스 혁명에 힘입어 다수의 LNG수출 프로젝트가 진행 및 심사 중에 있음을 감안하면, 각 프로젝트의 수출승인 및 가격공식 제안 상황에 따라서는 향후 국제 LNG시장에 유가연동방식 이외의 가격결정 구조를 갖는 LNG물량이 상당량 유입될 수도 있다는 점이 다소나마 희망을 갖게 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유가연동제의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겠는가가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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