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오세신 부연구위원.
에너지전문가 칼럼 1 - 석유부문
에너지경제연구원ㆍ에너지신문 공동기획

사람들은 단위에 민감하다.

미국 어바인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경제학 교수인 리챠드 맥킨지는 ‘팝콘과 아이패드’란 책을 통해 사람들이 물건 값을 볼 때 오른쪽에 있는 숫자일수록 가볍게 여긴다고 말한다. 즉, 낮은 단위의 숫자는 무시하는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플사가 아이패드 가격을 499달러로 책정하면 사람들은 아이패드 가격이 500달러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보다는 400달러 수준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2011년 들어 또 하나 단위가 바뀐 사건은 바로 국제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일이다. 2008년에도 같은 일이 발생했었다.

당시 WTI 현물가격이 3월 5일부터 그해 9월 11일까지 약 6개월 간 100달러 이상의 가격을 유지하였다.

유가 100달러 돌파는 그 당시 언론의 말을 빌리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시작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서면서 석유소비는 크게 줄어들었고 국제유가도 그해 12월에는 30달러 대까지 폭락하였다.

사람들은 올해에도 2008년과 똑같이 국제유가가 폭등 후 폭락할 것인지 아니면 100달러대에 안착할지를 궁금해 하며 물어온다.

2011년 2월부터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기 시작해 현재까지 11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원인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다발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어 석유시장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현재 북아프리카·중동 정세불안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100달러 행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달러 이상의 유가가 언제까지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생긴다.

사실 이번 리비아 사태가 단기간에 카다피 퇴진으로 종결되었더라면 국제유가는 9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석유의 수급상황이나 경제여건을 고려해 볼 때 100달러 수준의 유가는 너무 이르다는 지적이다. 또 2000년대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팽창과 금융규제완화로 석유시장에도 상당한 투기성 자금이 몰려들었다.

석유시장에서 이러한 투기적 행태의 증가가 국제유가의 변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의 유가 폭등 후 폭락 현상도 투기성 자금의 빠른 유입과 이탈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제회생을 위한 초 저금리 정책과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 하에서 확대된 가격 변동성또한 투기욕구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올해의 석유시장도 여전히 투기성 자금의 개입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2008년에 있었던 유가 폭락현상이 투기자들에게 하나의 학습효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석유시장에 심각한 수급문제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2008년처럼 빠른 속도의 유가 폭등과 폭락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현재의 북아프리카·중동 사태가 시장심리를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인 만큼 리비아와 중동사태의 전개양상에 따라 100달러를 기준으로 국제유가의 등락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다시 아이패드 얘기로 넘어가 보자. 처음에 499달러라는 아이패드 가격에 유혹된 소비자들도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면 499달러가 결코 400달러 수준이 아니라 500달러 수준임을 알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는 이미 ‘유가 100달러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내다가 ‘100’이란 숫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유가 100달러 시대’를 위한 준비를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다. 아무리 지구 곳곳에 숨겨져 있는 석유를 찾아 캐내고 캐내도 결국 경제성 있는 대체자원이 개발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유가는 상승한다고 봐야한다.

때문에 올해 국제유가가 언제까지 100달러 수준을 유지하느냐는 질문은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유가 100달러 시대’라는 인위적인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수년 전부터 그에 상응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고 이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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