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센터장

석유 내수시장 소비 이미 포화단계 진입
해외하류부문·석탄/가스사업 진출 필요

과거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석유기업의 효율적인 전략과 정부의 지원정책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국내수요의 급속한 확대였다. 그러나 이제 내수의 확대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석유수요는 이미 성숙단계로 접어들어 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되었고 점차 포화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10년간의 석유수요 증가율은 무려 14.2%에 달했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1998~2012년 기간 중의 연평균 석유소비 증가율은 1.5%에 그치고 있다. 다행히 2000년대의 석유제품 수출 증가는 국내수요 둔화에 따른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향후 아시아 신흥국에서 정제능력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석유제품의 해외 수출수요를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세계적으로도 화석에너지를 대표하는 석유는 녹색성장정책과 기후변화에 따른 각국의 대응으로 인해 소비에 제약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 대형 유전의 생산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새로운 탐사·개발 지역에서의 생산원가 상승으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석유가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점차 가스가격이 하락하게 되어, 가스가 석유수요의 일부를 대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자동차 보급도 장기적으로 수송부문 석유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석유제품의 생산과 수출 등 하류부문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국내 석유산업은 이러한 석유수요 둔화에 직면하여 새로운 미래 전략으로 사업의 다각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연자원 의존적인 석유산업의 특성상 부존 석유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수요마저 둔화되면, 국내 석유산업이 갖는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석유기업들의 사업다각화 정도는 해당 석유기업의 지배구조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즉, SK이노베이션과 같이 국내 주주가 중심인 기업은 정유 외에 다양한 사업 분야로 다각화가 진척된 반면, 해외 주주가 주도하는 기업의 경우는 다각화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국내 주주가 중심인 기업이 정유에 더해 석유화학과 타 에너지 판매 등 한국 내 사업영역 확대에 관심을 더 가져왔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국내 석유기업들은 모두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에 소속되어 있어, 사업다각화는 대부분 석유 관련 사업으로 제한되고 석유사업 외에 다른 사업으로의 다각화는 모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향후 국내 석유기업들이 사업다각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험을 통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강점과 새롭게 대두되는 기회요인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섯 가지 사업다각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세계 석유수요 장기전망.

첫째, 해외에서 정제시설을 운영하는 해외 하류부문 사업으로의 다각화이다. 국내 석유기업들은 석유정제설비의 규모는 물론 설비 운영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정제한 석유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면서 전 세계 30여개 국가에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을 활용해 해외 석유정제시설 운영부문에 진출하여 해외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최근 국내 건설플랜트 기업들이 중동과 남미 지역의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수주가 증가하는 것과 연계하여 해외 정유시설의 운영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동, 동남아, 남미 등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지역은 석유수요 또한 빠르게 증가할 것이므로 해외 하류부문 진출 대상으로 이들 지역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 가스와 석탄 등 화석연료 전반에 걸친 에너지사업으로의 다각화이다. 향후 에너지 사용은 최근 들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셰일가스 등 천연가스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석탄은 부존 자원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꾸준히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석유기업은 석유 이외에 천연가스와 석탄 등 화석연료와 저렴한 바이오매스 등을 취급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에너지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 국내 석유기업들이 다양한 연료에 대해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기술개발이 요구되며, 각 연료에 적합한 활용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거나 외부로부터 획득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자원개발 분야의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의 다각화이다. 향후 국제적인 석유기업들은 석유자원을 보유한 국영석유기업들에게 석유자원의 발견, 채굴, 개발, 판매 등 가치사슬의 전 과정에 대한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가의 자원에 대한 소유권이 점점 더 강화됨에 따라,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들은 에너지개발 기술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기업은 국내에 부존자원이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에너지자원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술서비스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기술서비스 사업으로의 다각화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역량을 가진 전문인력 확보이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을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 분야에 역량을 가진 해외 기업이 있다면, 적극적인 제휴 또는 인수를 통해 기술을 내재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선택적인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의 다각화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운영하는 운영사업자와 핵심 기술을 근간으로 기술을 공급하는 기술공급자라는 두개의 사업모형이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태양광 및 풍력에 대한 투자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고, 바이오매스의 경우도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해외에서도 현지 사업자가 대부분 시설운영을 직접 수행하고 있어서 운영사업자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덧붙여 말하면 국내 석유기업이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운영하는 운영사업자로서는 차별화된 역량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석유기업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공급자가 되어야 한다.
석유기업에게는 석탄이나 바이오매스를 고온에서 가스화한 뒤 합성연료를 생산하는 공정이 석유화학공정과 유사하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하여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유망한 벤처에 투자하고 기술의 상용화를 지원함으로써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다.

다섯, 전력에너지 수송시스템에 대한 서비스사업으로의 다각화이다. 이는 전기자동차 증가로 인한 석유수요 감소에 대응하면서 기존의 주유소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방안이다. 수송용 에너지원에 전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 현재 석유기업의 하류부문 사업모형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주유소를 전기충전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향후 수송용 에너지의 일부를 전력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한 중요한 기술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다. 자동차에 들어갈 2차 전지뿐만이 아니라, 직접 전력송전 그리드에 연결하여 전력을 저장하는 대형 전력저장장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유기업들은 전력저장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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