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모두가 마피아라면 아무도 마피아가 아닐 수도 있다. 아무에게나 마피아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은 본질을 흐리고 정곡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오르내릴수록 비리의 본질은 덮여버릴지도 모른다. 애꿎게도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다. 마피아라는 허상보다는 밑바닥까지 비리를 훑어내려 잡초를 베고 뿌리째 뽑아야 한다. 지금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늦지 않았다.

특정 대학, 특정 학과 출신에 의해 주도되는 원전 마피아가 자신들의 집단 이익만을 위해 국가의 원자력 정책과 연구 방향을 주도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들이 원전 이용을 주장하는 것은 지속가능하고, 온실기체 배출이 적은 원자력 외에 현실적 차선이 당장은 없어 보인다는 소명의식에 근거한 것이지 통째로 부도덕한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건 결국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최근 총리실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일련의 재발방지 대책과 언론보도는 원전 비리를 개인의 사리사욕 추구라는 측면을 주로 부각하고 이것을 가능케 했던 구조적 요인에 대한 원인규명과 대책수립은 상대적으로 미흡해 보인다.

시험성적서 위조는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망각한 제작, 검증, 검토, 승인 업체들에게 직접 책임이 있지만, 그 뒤에는 모든 견제와 균형 장치를 무력화시키면서 무소불위한 권력을 행사하는 유일무이 발주자가 있으며, 정부도 이러한 구조적 원인을 묵인하고 방치해온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시험성적서 위조를 계기로 국민적 사안으로 떠올랐지만, 원전 비리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닌 이상 이에 부합하는 근원적인 대책이 요망된다. 이번 시험성적서 위조도 종합설계수행업체가 주도한 것으로 보도되지만, 발주자도 최소한 이 상황을 알고도 눈감아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대책은 자칫 이번 사태의 구조적 원인규명과 종합적인 재발방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간 불공정한 계약관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던 원전업계 실무담당자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구조적 원인규명과 불공정 관행 개선이 정부의 책무라면 때마다 되풀이하는 일과성, 전시성 처방보다는 심대한 논의와 진솔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1급 전원 사표제출, 관련업체 취업 금지 등의 조치는 원전 비리의 구조적 원인과 거리가 있는 미봉책으로 재발방지의 실효성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 또한 비리의 근본적 원인규명을 호도하고 있어, 관련 직원들의 정서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원전 업계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비리의 중심에는 발주자가 있으며, 여타 협력 업체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발주자와의 불공정한 관계에서 파생된 측면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부당한 갑을 관계를 공정한 상생 관계로 전환시키고, 이들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조정, 통할할 정부 차원의 관제탑을 만들 것인가도 재발 방지대책의 요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대한 발주자의 현재의 독점적 지위를 분산시키고 다른 기관에 의한 견제와 균형을 복원시키는 구조적, 제도적 대책 마련이 재발방지대책의 핵심 사안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제시된 정부의 대책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원인규명과 대책수립과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 취업 제한 등 일부 대안은 향후 법률적 분쟁의 소지가 있으며, 원전 전문가와 실무 담당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단체기합을 주는 듯한 행태는 구조적 원인규명과 근원적 대책수립을 위한 선행조건인 소통에도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원자력 업계를 향한 국민적 분노는 감내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 전체적으로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재발방지책을 수립하고 신상필벌의 원칙을 지키려는 각별한 노력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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