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녹색당 사무처장

밀양 송전탑 문제는 어느덧 햇수로 9년이 됐다. 전국적 이슈로 부각된 시기는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이 계기가 됐다.

지난 5월20일, 한전은 공사를 재개했고 주민들은 온몸으로 저지했다. 그 과정에서 20여명의 주민들이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시민들은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주민들은 나뭇가지에 밧줄을 매달고 목숨을 바치겠노라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곳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너무나 절박하게 들린다. 무엇이 극한의 대결로 내몰았는가? 그 한 가운데에는 한전의 비밀주의와 밀어붙이기식 사업 강행이 있다.

한전이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내세웠던 논리는 겨울철 전력난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1년 9월에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를 기억하는 국민이라면 한전의 ‘겨울철 전력난’이라는 말에 깜짝 놀랄 법도 하다. 전기가 끊긴 곳은 모든 것이 멈췄기 때문이다. 대규모 정전이라는 트라우마가 생기면서 시민들은 한전의 논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한전의 논리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지난 5월23일 변준연 당시 한전 부사장은 “UAE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참고모델이 됐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문제는)꼭 해결돼야 한다”며 “2015년까지 (신고리 3호기가)가동되지 않으면 페널티를 물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밀양 송전탑을 강행하는 이유는 겨울철 전력난 때문이 아니라 UAE 원전수출 계약 때문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전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전력난을 이유로 국민에게 겁박을 준 것과 다름없다.
그뿐이 아니다. 밀양 주민들이 대안으로 주장하는 기존 345kV 송전선로를 통한 용량증대만 하더라도 한전은 신고리 5,6,7호기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765kV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제남 의원실의 김제호 비서관에 따르면 지난 28일 밀양 송전탑 긴급토론회에서 전력거래소는 2011년 12월 ‘중장기 전력계통 운영전망’과 관련해 “2019년 5월에 기존 고리-신울산 345kV 송전선 용량을 증대한다”는 계획을 세워 놨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전은 “(용량증대는)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했다.

실제로 수도권의 경우 345kV 송전선로에 90%가량의 송전량 부하가 걸리지만 잘 운영되고 있다. 밀양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애초 ‘신고리-북경남’간 765kV 송전선로는 수도권 전력공급이 목적이었으나 ‘영남지역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으로 변경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영남 지역의 단거리 송전을 위해 초고압 송전탑이 꼭 필요한 것인가? 이에 대한 한전의 반응은 변함이 없다. 765kV 송전선 건설 공사를 강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대화를 하자고 손을 내밀지만, 한전 스스로 대화의 창문을 닫아버렸다.

다행인 것은 5월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한전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했다는 소식이다. 협의체 운영 기간(40일) 중에는 공사를 중단한다는 것이 합의 내용 중 하나다. 반가운 일이다. 밀양 주민뿐만 아니라 마음을 졸이며 지켜봤던 많은 시민들은 한 가닥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기존 선로를 활용한 우회송전의 가능성 여부, 지중화와 같은 대안적인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한전에게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40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치열한 논의가 예상되지만, 어떠한 전제가 없는 백지상태에서 논의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객관적 판단을 위해서는 정보공개가 전제가 돼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는 가치를 되새기며, 슬기로운 결정이 도출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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