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 회장

디지털 제품 다양화로 매년 1.3% 소비 증가 예상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기전력 차단 정책 절실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귀신으로 알려진 흡혈귀(vampire: 吸血鬼)는 민간 전승(傳承)에서 밤중에 시체로부터 되살아나 자고 있는 사람의 생피를 빨아먹는다는 악령을 말한다. 그래서 남을 등쳐먹는 사람, 착취하는 악당, 때에 따라서는 요부, 독부(毒婦)를 의미하기도 한다.

극장에서는 무대에서 갑자기 배우를 퇴장시키거나 등장시키기 위한 용수철식 함정문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 중남미 열대지방의 흡혈박쥐(vampire bat)는 박쥐의 일종으로 말이나 다른 동물의 생피를 빨아먹고 산다고 한다.

전기제품이나 전자기기의 본래의 기능과는 무관하게 전기가 낭비되는 대기전력(standby power)은 전기를 쓸데없이 잡아먹는 전기흡혈귀(power vampire)에 비유된다. 우리나라는 가구당 연간 306kWh를 소비해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소비량의 무려 11%를 대기전력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국가 전체 전력소비량의 1.7%에 해당하며 매년 4600GWh가 낭비되어 놀랍게도 금액으로는 5000억원이 허무하게 없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사용되지도 않는 대기전력 소비를 위해 100만kW급 원자력발전소 1기가 가동중인 셈이다. 순시 대기전력은 기기당 평균 3.66W, 1가구당 57W에 이른다.

각국 가정의 대기전력소비 비중을 보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데, 일본은 9.4%, 미국 5%, 호주 12%, OECD 10%로 선진국보다 우리나라의 대기전력 낭비가 큰 것으로 나타나 우려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가구당 3만5000원 정도를 대기전력을 위한 요금으로 무의미하게 지불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로는 1500만 가구가 연간 4600GWh를 낭비하고 있다. 즉 돈으로 환산해 5000억원을 전기제품과 전자기기가 작동도 하지 않을 때 소비되는 대기전력을 위해 지출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다.

게다가 디지털 TV, 셋톱박스, 홈네트워크 등 디지털기기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롭게 탄생한 제품들로서 대기전력을 새로이 발생시켜 향후 대기전력소비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래 우리나라 가정의 홈네트워크화 추세로 인한 대기전력의 급증으로 앞으로 20년간 매년 평균 1.3% 전력소비의 증가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IEA의 발표자료에 의하면 오는 2020년 경이면 가정소비전력 중에서 무려 25%정도를 대기전력이 차지할 것이라는 대단히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전력과 관련된 제도로는 제조업체의 자발적 참여를 기초로 지난 1999년 4월1일부터 시행중인 에너지절약마크제도가 있다.

대기시간(待機時間)에 절전모드를 채택한 에너지 절약형 가전제품 및 사무기기 보급을 위한 것으로 대상제품은 컴퓨터, 모니터, 프린터, 팩시밀리, 복사기, 스캐너, 복합기, 절전제어장치, 직류전원장치, TV, 비디오, 오디오, DVD플레이어, 전자레인지, 휴대전화충전기, 셋톱박스, 도어폰 등 모두 17개 품목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절약마크제도가 첫 시행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총 5900만대의 절전형 전기제품이 보급됐다. 이로써 3891GWh를 절약해 금액으로 환산해 4300억원의 에너지 절약에 크게 기여했으며, 150만kW의 전력수요를 감소시켜 51만tCO₂의 이산화탄소 감축효과를 거뒀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시장점유율의 56%인 1811만대를 보급한 TV와 비디오의 경우 대기전력소비가 1999년 이전의 7~10W에서 2003년의 2~3W수준으로 획기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중에서 1W 이하 제품은 대개 14%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전기제품과 전자기기가 연간 4000만대 이상이 신규로 판매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추가로 비용효과적인 신기술의 적용으로 인해 최대 75~90%의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시된다.

제조업체의 입장에서도 대기전력 절감은 에너지의 절약 실천이 가장 효과적이고 용이한 분야로 분석되고 있으며, 1대당 1~2달러로서 상대적으로 제조원가가 상승하는 비용의 부담이 적다. 정부는 현재 3W수준에 머물러 있는 대기전력소모를 어떻게 하든 1W이하로 낮추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기전력 1W프로그램’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대기전력 1W 절약프로그램은 그 자체의 의의와 동시에 에너지절감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선언적 의미와 함께 에너지소비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전력(standby power) 문제를 사회이슈화함으로써 국민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있다. 그리고 또 전국민적인 에너지절약 실천의 진정한 의미와 절박성을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대기전력 절감사업을 전 국민적 운동으로 지정하고 대기전력 1W 절감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갈 경우 대기전력으로 소비되는 연간 5000억원에 상당하는 4600GWh의 전력소비량이 70%까지 절감이 무난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행 기술로 1W 목표가능한 대기전력 모드(mode)는 전원 버튼을 이용해 전원을 꺼도 소비되는 전력인 ‘꺼짐’(off) 리모컨을 이용해서 전원을 꺼도 소비되는 전력인 ‘소극적 대기’(passive standby)이다.

1W까지의 절감달성이 불가능한 소위 ‘적극적대기’(active standby) 상태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기기 전원을 꺼도, 이때 소비자는 꺼진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20~30W에 이르는 많은 대기전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또 전기기기가 동작중 사용하지 않는 대기 상태에서 소비되는 전력인 휴면(休眠: sleep)모드는 대기전력 절감을 위한 기술개발지원 및 에너지절약마크제도의 기준강화를 통해 절감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전력 절감로드맵의 수립을 위해 소비자단체, 제조업체, 관련 단체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추진위원회를 최근에 구성한 바 있다. 그리고 관련업계의 기술수준과 시책적응기간 등을 감안해 기기별 그리고 단계별 예상 달성 수준을 총괄적인 계획에 반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대기전력의 정의와 중요성에서부터 기기별 또 연도별 달성수준, 대기전력의 소모기기에 대한 정부조달체계의 개선책, 디지털기기 대기전력의 절감정책 등이 포함됐다.

점차로 네트워크화해가는 추세로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디지털기기에 대해서는 대기전력의 절감을 위한 기술개발의 지원에 관련된 세부지침이 하루빨리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대기전력과 관련한 국제협력을 추진키위해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회의에 우리도 적극 참여하고 2005년 APEC대기전력 전문가 회의의 한국개최를 유치추진 등 IEA, APEC 등과 대기전력에 관한 공조활동 및 표준모델을 선정해 국제기준의 일체화를 벌여나가고 있다.

1W 달성을 위해 정부는 동원이 가능한 모든 방책을 통해 실행가능한 정책수립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정부조달구매에 대한 대기전력 1W를 반드시 적용하고, 정부와 제조업체의 생산부문과 소비자단체 등 소비부문과의 대규모 절전협약을 체결하고, 에너지절약마크제도 기준을 1W 의무규정의 적용 등을 시급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대기전력 1W 절감 프로그램 추진을 위한 범소비자운동을 지원하고 있고, 몇몇 소비자단체에서는 1W 이하 절전제품 구매운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또 정부에서는 TV, 비디오, 오디오, DVD플레이어, 전자레인지, 휴대전화충전기, 모니터, 절전제어장치 등 1W 이하 절전제품의 DB를 공개하고 소비자운동을 지원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전기제품과 전자기기의 불필요한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의 바람직한 사용행태로의 변화를 유도하고, 대기전력 절감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널리 보급해 효과적인 대기전력 절감 추진을 모색하고 동시에 이에 적절한 실효성있는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국민과 기업들에게 이러한 전개운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홍보를 통해 널리 알리고 동참을 호소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네트워크화된 시대에는 모든 전기제품과 전자기기들이 전원에 계속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뽑는 식의 운동은 한계가 있고 소극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기제품과 전자기기의 제조업체가 대기전력 절감은 이 시대의 지상과제라는 굳은 의식을 갖고 근본적으로 대기전력절감기술을 개발해 모든 기기의 설계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가전 제조사들이 저마다 대기전력 절감을 제품의 홍보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품의 성능과 가격만을 중시하던 예전에 비하면 크게 바뀐 풍경이다. 앞으로도 대기전력 ‘제로’화를 위해 모두가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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