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정책 바로 세워 수급 위기 극복하자

-전력난 근본원인 ‘한전 민영화 포퓰리즘’-
-전기요금제 전면개편…서민 삶의 질 높여야-

최근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한전과 정부의 갈등, 전력거래대금 정산조정계수를 놓고 한전과 전력거래소, 발전사들과의 다툼과 더불어 올여름 에어컨 가동에 따른 ‘주택용 전기요금 폭탄’ 등 한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연일 언론에 보도돼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또 올여름 심각한 전력수급 위기가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한전을 둘러싼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왜 최근 들어 불거졌으며, 서로 간에 연관성은 없는 것일까?

지난해 9월 15일 발생한 전국적인 순환정전 사태와 더불어 올여름 무더위로 인한 심각한 전력수급불안 문제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대두 됐으나, 더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전력수급 위기가 이제는 여름철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중 발생하는 일상적인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2001년 한전을 민영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분할해 경쟁체제로 만들면서 도입한 전력거래 제도와 더불어 정부의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인 전기요금 제도의 모순 등 전력산업에 대한 정부정책의 총체적인 부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2001년 한전을 민영화하기 위해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분할, 발전경쟁 체제로 만들고 한전이 전력거래소에서 비정상적인 계통한계가격(SMP)으로 전력을 구입해 국민들에게 공급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전력거래제도 도입, 구역전기사업제도 도입, 민자 발전회사 확대 등 시장경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결과적으로 발전경쟁의 확대는 분할로 인한 비효율이 증가했고 정보비대칭이 심화되면서 9·15 순환정전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유발시켰다.

한전분할 이후 도입된 전력거래제도는 한전이 전력거래소에서 발전회사로부터 전기를 구입해 국민들에게 공급하도록 하고, 발전소별 경쟁 입찰을 통해 결정되는 구입가격은 매시간 최고가격을 지불하도록 만든 계통한계가격 결정방식이다.

즉 가격이 저렴한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에 대해서도 LNG나 중유발전소와 같은 비싼 가격으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한전은 추가적으로 막대한 전력 구입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같은 제도적 모순 때문에 현재 한전 발전자회사들에 대해서는 별도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강제로 전력 구입비를 삭감하고 있지만, 대기업 소유 민간 발전회사에 대해서는 SMP가격을 그대로 적용해 막대한 특혜를 주고 있다.

비정상적인 SMP 전력거래제도가 한전에게는 막대한 손실을 입히는 대신, 단지 8.5% 정도의 발전설비를 가진 대기업 소유 6대 발전사들은 전체 한전 발전자회사의 이익과 맞먹는 연간 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리는 특혜제도로 전락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올해 상반기만 해도 한전이 발전회사로부터 구입한 전력요금은 24조 8천억원에 달하는 반면 한전이 소비자에게 판매한 전기요금은 22조 8천억원에 불과해, 원가는 고사하고 단순히 전력 구입비에서만 무려 2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6차 기본계획을 수립한 신규발전소 건설의향서 제출결과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들이 모두 참여한 사실에서 역설적으로 이 제도의 모순이 잘 나타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기요금 제도다. 2008년부터 환율과 유가, 석탄가가 급등한 반면 전기요금은 물가안정을 이유로 철저히 통제됐다.

그 결과 가스, 석유 등 1차에너지 수요가 대거 전기에너지로 대체돼 유류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전기수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전열기 사용이 급증하고 주물공장이나 비닐하우스 등에서 유류나 가스를 전력으로 대체 사용하는 전력과소비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 전체적으로 에너지 사용의 비효율이 증가해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이와 같이 전력수급 위기가 비상식적인 전기요금 그리고 대기업만 살찌우는 전력거래제도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인과관계에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정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전력수급위기의 문제는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전력수요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에너지사용의 사회적 효율성을 높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현행 SMP 전력거래 제도를 폐지하고 발전사별로 평균비용에 근거한 합리적인 전력거래 제도를 도입하고 나아가 전력산업의 조속한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 전력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8월 6일 감사원을 방문, 특별감사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현행 비정상적인 전기요금도 즉각 정상화해야 하며, 정상화의 원칙은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예컨대 주택용 전기요금의 경우 현행 누진체계는 과거 1970~1980년대의 소득과 주거·문화생활 수준에 근거한 것으로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는 소득의 형평성을 고려한 합리적 누진이 아니라 오히려 징벌적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의 소득과 문화생활 수준을 감안해 누진단계를 3~4단계로 축소하는 한편 누진요금 또한 최대 2배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아울러 저소득층의 에너지지원은 전기요금에 한정해 지원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 선택권을 확대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고 정부 재정에서 이를 지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농사용, 관광호텔, 전통시장, R&D, 교육용, 다자녀, 보훈 등 각종 정책요금은 과감하게 축소해 재정으로 지원해야 할 부분과 한전이 부담해야 할 부분, 그리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부분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산업용 요금에 대해서는 산업경쟁력 등 고려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에너지과소비 형태의 생산방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원가 이하의 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전기요금을 통한 교차보조는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한편 에너지 절약형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을 더디게 할 뿐으로 이는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사용의 비효율을 증가시키는 요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전기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로서 제공돼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전기는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재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영화를 통해 시장경쟁을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전력산업 정책으로는 결코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한전을 쥐어짜서 대기업 민자 발전사를 살찌우는 전력거래제도를 즉시 폐지하고 비정상적인 전기요금제도를 정상화해서 전력수급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국가 전체적인 에너지사용의 효율성을 높여 나갈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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